[향토문화] 제주 지역 최초의 극장..일도1동 창심관(극장)(멸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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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제주 지역 최초의 극장..일도1동 창심관(극장)(멸실)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5.04 0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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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1916~1965)이 처음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른 곳

일도1동 창심관(극장)(멸실) 터

위치 ; 제주시 일도1동 1476-11(관덕로 67)
시대 ; 일제강점기(1926~1928년 추정)
유형 ; 공연시설(극장)

 

일도1동_창심관터

 

창심관(暢心館)은 일제강점기 가와노 마사카즈[河野正一]라는 일본인이 경영했던 제주 지역 최초의 극장이다.

1926~1928년 경에 만들어진 이 극장은 영화 상설관이 아니라 악단이나 유랑 극단도 무대에 올랐다고 하여 창심관(暢心館)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창심관에서는 무성영화와 유랑 극단의 공연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 까닭은 기상 악화로 육지에서 배편이 막히면 활동사진이라 불렀던 무성영화 필름을 구할 길이 없어 창심관은 휴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는 유랑 극단이 공연하였기 때문이다. 유랑극단의 공연은 매우 인기가 좋았다.

무성영화가 상영되던 때에는 영화를 상영할 때 그 장면을 해설해 주는 변사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서울에서 무성영화 필름이 들어오더라도 변사가 같이 따라오지는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럴 때 창심관에서는 작고한 김성택(가수 혜은이의 부친)이 가끔 대본을 읽어 본 후 무성영화의 장면 장면을 해설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창심관이 1930년대 초 영사기사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됨에 따라 제주 지역은 1944년 제주극장이 설립될 때까지 노천극장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대한민국 시대까지 유명 가수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1916~1965)이 처음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른 곳도 이 창심관이다.

제주 출신 영화평론가 김종원씨에 따르면 제주는 이난영의 재능을 발견하고 데뷔할 수 있는 실마리 기회를 제공한 장소라고 한다.

김씨 증언에 따르면 이난영은 11살 때 아버지의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 오빠 이봉룡의 도움으로 제주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왔고, 당시 어머니는 제주읍에서 극장을 경영하고 있는 일본인 집의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이난영은 주인집에 있던 유성기를 듣고 따라 부르곤 했는데 일본인 사장 가와노씨가 이난영의 재능을 알아보곤 무대 중간중간에 노래를 부르는 막간가수로 무대에 서게 한 것이다. 이 시기는 1926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난영을 뒤따라 오빠 이봉룡도 제주에 들어와 면허증은 없었지만 창심관에서 제주 최초 영사기사로 활동했는데 영사기를 잘못 만져 목조건물인 창심관 내부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이봉룡은 뭍으로 도망쳤지만 향후 '목포는 항구다' 등을 작곡하는 유명 작곡가로 변신하였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미디어제주151122, 제민일보160613)
《작성 1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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