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100여년 전 축조..신흥리 방사탑(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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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100여년 전 축조..신흥리 방사탑(재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5.10 0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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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은 모래밭 중간에 있는 암반 위에 세웠고, 서탑은 모래밭에 세워졌다

신흥리 방사탑(재현)

•위치 ; 조천읍 신흥리 신흥리 1-11번지(東塔, 大城昌塔), 125-3번지 북쪽 큰개의 중앙 지역(中央塔)과 서쪽 지역(塔矸塔, 西塔)
•시대 ; 조선
•유형 ; 민간신앙(방사용 탑)

신흥리_동중서탑

 

 
무술년(1898) 봄 1월에 동네 원로들이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 동네는 북방이 크게 허하니 탑을 쌓아 살(煞)을 막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니, 온동네가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각처에 탑을 쌓으니 섬여답(剡嶼塔), 큰개답(大浦塔), 큰성창답(大城昌塔), 답알답(塔矸塔)이 이것이다.(북제주문화원, 신흥리지 104쪽)

돌탑은 북쪽에서 비추는 새(邪, 厄)를 막기 위하여, 또는 殺氣를 제하기 위하여 쌓은 것인데 신흥리 설촌이 200여년쯤 전(조선 순조원년;1801)의 일이고 분향이 80년이고 보면, 축조된 것이 100여년 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 이 마을에는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5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파도에 무너져 없어져 버린 후에는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나고 특히 언청이로 태어나는 아기가 많았기 때문에 탑을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2001년 8월 5일 신흥리 거주 김민복씨와 대화)

또는 “귀인이 신흥리를 지나다가 마을이 게 형상이라 액운이 있겠다고 했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나도 게가 집게발로 물어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탑을 쌓아 액을 막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는 주장도 있다.(블로그 푸른솔)

東塔, 中央塔, 西탑(사진 위로부터) 등 세 개의 탑은 모두 2000년에 복원했는데 먼저 있었던 탑보다 더 큰 돌들을 이용했으며 규모도 더 크지만 쌓은 방법은 자연스러운 허튼층쌓기로서 전과 같다. 방사탑들은 대체로 〈동, 서, 남, 북, 중앙〉으로 자리잡았다.

기존의 큰개 탑과 세벡개 탑을 남-북으로 하여 그 중간에 중앙 탑을 세우고 중앙 탑의 동쪽으로 하나, 서쪽으로 하나를 일직선이 되게 탑을 쌓았다.

중앙탑은 모래밭 중간에 있는 암반 위에 세웠고, 서탑은 모래밭에 세워졌다. 둘 다 밀물 때면 아래 부분이 잠긴다. 동탑은 바닷가 동산 위에 있다. 새로 쌓은 탑에는 모두 길쭉한 돌을 세웠다.
《작성 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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