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탐라국 개국신화 선사 주거유적..온평리 동굴입구집자리(신방굴,신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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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탐라국 개국신화 선사 주거유적..온평리 동굴입구집자리(신방굴,신혼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5.12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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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에서 혼례식을 올린 후 신방을 꾸렸다는 곳.. 요즘에는 신혼굴로 불려

온평리 동굴입구집자리(신방굴,신혼굴)

 

위치 ; 성산읍 온평리 1725-2번지. 주변은 완만한 구릉지대로 해안에서 직선거리 1.5km, 해발 60m에 있다.
시대 ; 탐라시대초기
유형 ; 선사주거유적(신화유적)

온평리_혼인지신방굴 左
온평리_동굴입구집자리(디서문)

 

혼인지의 동북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탐라국 개국신화와 관련된 선사주거유적이다. 신화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고양부 삼신인은 수렵과 어채로 생활을 일삼고 있었다. 하루는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이 찬란한 목함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목함을 뭍으로 꺼내 뚜껑을 열었는데, 그 속에는 또 다른 상자가 있었고 상자 속에는 15-16세 가량의 처녀 3인이 있었다.

이들은 벽랑국 황제의 딸들로서 天王께서 탁라국에 훌륭한 세 신인이 배필을 구하고 있으니 그곳에 가서 배필이 되라 하고 오곡의 씨앗과 가축을 함께 보내 주셨다 하고 자기들을 지어미의 도리만 아니라 탁라국에서 천추만대의 영화를 누리고자 하옵니다 라고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고양부 삼신인은 이들을 데리고 혼인지에서 목욕을 하고 혼례식을 올린 후부터 농경과 목축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제주도, 제주의 문화재. 146쪽)

혼인지에서 혼례식을 올린 후 신방을 꾸렸다는 곳이라고 해서 요즘에는 신혼굴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동굴입구집자리이다. 용암동굴의 천정부가 무너진 입구에 형성되었다. 동굴의 규모는 동서 길이 5.3m, 남북 길이 6.2m, 높이 1.3~1.8m이다.

바닥은 용암 암반층이 노출되어 있거나 5~10cm의 얇은 두께로 흙이 부분적으로 퇴적되어 있다. 유물은 소량의 토기편이 확인되며, 유물이 확인되는 퇴적층은 현무암 바닥과 얇게 퇴적된 흙무더기 일부에서 확인된다.

굴의 입구는 남쪽으로 트여 있고 진입부분은 입구에서 굴의 내부로 경사를 이루어 내려간다.(현대에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유적이 형성된 곳은 입구를 들어서면 세 방향으로 가지굴이 나누어지는데, 그 오른쪽과 가운데에 위치한 굴이며, 이곳에서 선사 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소량의 토기편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적갈색 경질토기편으로 탐라 시대 전기[AD 0~300]에 확인되는 외반구연의 항아리편과 회청색 경질토기편이다. 토기의 태토에는 굵은 현무암 알갱이를 보강재로 혼입하였고, 두께는 1~1.7cm 정도이다.

온평리 동굴 유적이 형성된 시기인 탐라 시대는 대규모의 마을 유적이 형성되는 시점으로 동굴 유적은 상시주거용보다는 특수 목적[제의공간·저장공간·임시거처 등]으로 이용되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작성 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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