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4·3사건 때 여러 마을 786명 희생..중문동 제주4·3중문면희생자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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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4·3사건 때 여러 마을 786명 희생..중문동 제주4·3중문면희생자위령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5.16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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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희생이 많았던 천제연폭포 인근에 세워져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중문동 제주4·3중문면희생자위령비

위치 ;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천제연폭포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비석(위령비)

중문동_43희생자위령탑
중문동_43희생자위령비

 

중문면은 현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로 편입되었지만 4·3사건 당시에는 강정리·대포리·도순리·상예리·색달리·영남리·월평리·중문리·하예리·하원리·회수리 등 11개 마을을 합쳐 이룬 면단위 행정구역이었다.

4·3사건 때 중문면 여러 마을에서 786명이 희생당했다. 이에 4·3유족회 서귀포시중문지회는 2008년 3월 26일 위령비를 세웠다.

2007년 7월부터 4·3 유족회 서귀포시 중문지회 강완준 회장과 이신화 고문을 중심으로 위령비 건립 논의가 시작되어 부지를 물색하던 중 2007년 7월 7일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당시 지사장 이창윤]로부터 중문관광단지 내에 부지사용 승인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해 11월경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중문 지역 출신 의원과 제주특별자치도[당시 도지사 김태환]의 협조로 예산 5천만 원을 확보하여 중문석재사[사장 박복현]와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을 추진하여 2008년 3월 26일 제막했다.

위령비는 높이 최대 250㎝, 너비 최대 430㎝, 두께 65㎝의 불규칙한 타원형의 조면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대리석으로 제작된 밑돌 위에 세워져 있다. 위령비의 좌측에는 건수기, 우측에는 시비가 세워졌는데 각각 대리석으로 만든 밑돌에 오석의 비석으로 제작되었다.

위령비 앞에는 대리석으로 제작된 가로 240㎝, 세로 90㎝, 높이 50㎝의 제단이 놓여 있고 위령비 경계 좌우측에는 220㎝ 높이의 석등이 세워져 있다.

위령비의 전면에는 ‘제주4·3 중문면희생자위령비(濟州四·三 中文面犧牲者慰靈碑)’라 음각하였고 후면에는 ‘4·3희생자 영위(4·3犧牲者 靈位)’라 세기고 그 밑에 중문면 4·3희생자 760명과 피해자 27명의 명단을 음각하였다.

건수기 전면에는 ‘제주4·3 중문면희생자위령비 건수기(濟州四·三 中文面犧牲者慰靈碑 建竪記)’, 좌측면에는 ‘2008년 춘(二00八年 春) 4·3희생자중문유족회 세우다’라고 쓰고 우측면에 위령비 건립 추진위원 명단을 새겼으며 후면에 제주4·3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중문면 출신 786위(位) 영령들을 신원(伸寃)하는 심정과 제주4·3사건의 간략한 경과, 4·3사건 진상규명운동의 과정 등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추모시비에는 「4·3의 통한(痛恨) 그 울음의 메아리」라는 청자(淸字) 김용길(金龍吉)의 시를 새겨 넣었다

중문면 4·3사건희생자의 넋을 달래는 공간으로 당시 희생이 많았던 천제연폭포 인근에 세워져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작성 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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