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제는 비로소 아픔을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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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제는 비로소 아픔을 마주하며
  • 이준혁
  • 승인 2024.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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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이준혁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이준혁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제주 4.3 사건 이후 76년이라는 막막한 시간이 흘렀다. 아픔의 눈물은 굳어져 피와 살이 되었고, 마음의 눈물은 말라서 이제는 오래된 친구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고민과 행동과 공감을 나누었는가?

공무원이 되어 실무 수습 직원으로 근무하며 4.3 희생자분들의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돕는 일을 했었다. 보상금 지급 서류를 작성하며 연신 감사함을 전하는 유족분들께 무거운 마음이 들곤 했다. 받아야 할 보상을 받으시는 것이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희생자분들의 곁으로 가신 유족분들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는 없었다.

한 어르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월 첫째 주에 사무실을 방문해주셨다. 꽁꽁 언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신 어르신은 몸보다 마음이 추우셨을지도 모른다. “나 우리 아방이 나 태어낭 많이 아껴줬져, 나 자식 많은 우리집 막내딸로 잘도 하영 사랑받았져. 나 얼마 말허지 않았는데 막 눈물만 남신게.” 어르신이 울며 잡는 두 손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긴 세월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했다.

제주 4.3의 고통은 지난 과거의 세대와 현재의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연결점일지도 모른다. 비극은 어디에나 있고, 희생의 빗물 위에 다시 새로운 새싹이 자란다. 희생을 직접 겪지 않은 우리가 어르신의 이야기만 듣고도 같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듯이 세대 간의 공감이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가장 건강하게 극복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이제는 제주가 나서서 먼저 보상금을 지급하고 희생자분들의 아쉬웠던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주고 있지만, 앞으로는 살아계신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더 열린 공간에서, 더 따뜻하게 감싸주는 여러 행사도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아픔의 트라우마는 공감하는 마음과 문학, 또는 예술을 통해서도 승화되어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지난 아픔을 비소로 마주하고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제주 4.3 사건을 추모하는 우리의 목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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