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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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2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3.3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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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원문(原文)】

<그림 8> 김상헌(金尙憲) 《남사록(南槎錄)》에 실린 최부(崔溥)의 <탐라시(耽羅詩)> 35절(3)
* 자료출처 : 《제주사자료총서(濟州史資料叢書)》(Ⅰ)(제주도, 1998), 308~309쪽.

 

【판독(判讀)】

得靑春光 世傳東角東巫峽 絃管遙聞第幾疊

百里香雲繚繞中 仙曹此處應登躡 俯瞰人間

隔世蹤 海中別有瀛洲峯 秦童漢使枉費力 遺

與三韓作附庸 南畔是山北畔海 毛興古穴中

間在 雲烟埋沒事茫然 欲問遺風今幾載 憶昔

神人開國初 山從游獵水從魚 身如野鶴無歸

着 地濶天高未有廬 石函當日來何處 知向郊

原播稷黍 歲久朱陳成一村 子孫乃爾多如許

星茫初動雞林天 已艤耽津一葉船 恰似老人

朝北斗 從今始與通人烟 好爵旋封兄及弟 榮

還故國傳來裔 梯航款叩不辭頻 朝事新羅暮

百濟 松岳龍興掃黑金 預先歸去獻其琛 奈何

變作逋逃藪 流入胡元染惡深 候風島口金方

慶 明月浦頭都統瑩 前後旌旗盖海來 渠心厭

亂知相應 通精暴血濺池隍 哈赤頑魂飛劒鋩

網盡鱣鯨付鼎鑊 年來無複海波楊 到頭安堵

復蘇息 弋獵謨生任所得 鮮棹扁舟向北風 却

將土物供臣職 爾來一百十餘年 贏得 王家

德化宣 文物儘從周禮樂 版圖編入禹山川 我

今萬里擎 丹詔 跋涉遠來並海徼 又有同舟

 

【해석(解釋)】 (5)

世傳東角東巫峽(세전동각동무협) 세속에 전하길 산 동쪽 모퉁이에 동무협 있어

絃管遙聞第幾疊(현관요문제기첩) 어렴풋 관현소리 들리니 몇 번이나 울렸던가.

百里香雲繚繞中(백리향운료요중) 백리 걸쳐 향기로운 구름 뭉실뭉실 감아 도니

仙曹此處應登躡(선조차처응등섭) 신선들 응당 이곳에 함께 올라타 있겠지.

※ 운자 : 입성(入聲) ‘葉(엽)’운 - 疊, 躡

 

【해설(解說)】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주목(濟州牧) ‧ 고적(古跡)>조에 보면, “신선이 사는 곳으로 알려진 동무소협(東巫小峽)은 원교산(圓嶠山) 동쪽에 있고, 아울러 그 동북쪽에 영주산(瀛洲山)이 있어서 세상에서 탐라를 일컬어 동영주(東瀛洲)라고 부른다.”라고 했다. 이를 소재로 작자는 다시 시어로 담아내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정의현 쪽에 영주산(瀛洲山)이라 불리는 오름이 있다.

<그림 (9)> 안개에 둘러싸인 영주산(瀛洲山) *필자 촬영

 

【해석(解釋)】 (6)

俯瞰人間隔世蹤(부감인간격세종) 굽어보니 인간 세상 바뀐 느낌 듦 제격이라

海中別有瀛洲峯(해중별유영주봉) 바다 가운데 있는 별천지, 영주산 봉우리네.

秦童漢使枉費力(진동한사왕비력) 진나라 한나라 사신들, 헛되이 힘을 써서

遺與三韓作附庸(유여삼한작부용) 삼한에 넘겨주어 부용(附庸)토록 만들었네.

※ 운자 : 평성(平聲) ‘冬(동)’운 - 蹤, 峯, 庸

 

【해설(解說)】

진시황이 중국 6국을 통일한 후,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한 조처로 서복(徐福) 일행의 사절단을 제주에 파견했다는 전설을 시어로 담아 표현해내고 있다.

<그림 (10) 진시황과 불로초 사절단 서복 일행의 동상(중국 산동성)

 

한편 서복 일행이 발해만과 한반도의 서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경로를 지도로 표기한 그림에 보면, 제주에 들른 후 중국으로 바로 건너갔거나, 혹은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중국으로 감을 제시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그림 (11)> 진나라 서복(徐福) 일행의 예상 이동 경로

 

한편 서귀포시 정방폭포 벼랑엔 서복 일행의 글씨로 ‘서불과차(徐市過此)’란 네 글자가 남아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를 두고서 ‘서쪽으로 돌아감’이란 의미에서 ‘서귀(西歸)’라는 지명이 유래했음을 부연해 설명하기도 한다.

김석익(金錫翼)의 《심재집(心齋集)》에 보면, “옛날에 목사(牧使) 백낙연(白樂淵)이 순행(巡行)하던 중 이곳에 이르니, 어떤 사람이 (서복 일행이 글씨를 새겨놓았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에 명하여 절벽 위에서부터 긴 줄을 매달아 한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 그 글자의 자취를 본떠 돌아오게 했다. 자체(字體)가 올챙이 ‧ 새 ‧ 벌레의 모양과 같았다. 모두 12자였으나 해석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해석(解釋)】 (7)

南畔是山北畔海(남반시산북반해) 남반부는 산이요 북반부는 바다인 곳,

毛興古穴中間在(모흥고혈중간재) 모흥혈(毛興穴) 오랜 유적 그 사이로 있다네.

雲烟埋沒事茫然(운연매몰사망연) 구름안개 자욱이 깔려, 얽힌 사연 아득한데

欲問遺風今幾載(욕문유풍금기재) 남은 풍속 묻길, ‘그 몇 해나 됐나요?’라네.

※ 운자 : 거성(去聲) ‘隊(대)’운 - 在, 載

 

【해설(解說)】

‘남반부는 산이요 북반부는 바다인 곳’이란 표현은 본래 고득종(高得宗)의 <홍화각기(弘化閣記)>에서 “제주가 고을이 되면서 북쪽으로는 큰 바다를 베개 삼으니 호호탕탕(浩浩蕩蕩)하며 수세(水勢)가 웅장해 천 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높은 산을 마주하게 되니 울울총총(鬱鬱葱葱)하며 초목이 푸르고 울창하여 사철이 한가지 색깔이다.[濟為州北枕巨海 浩浩蕩蕩 一目千里 南對崇岳 鬱鬱䓗䓗 四時一色]”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삼성혈을 두고 일명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한자어 ‘毛’의 형태가 ‘三 + 乙’의 구조로 이뤄진 글자인 점을 들어 삼을나(三乙那)가 일어난 곳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12)> 삼성혈의 과거 모습(일제강점기) * 사진출처: 《제주 100년》 (제주도)

 

<그림 (13)> 삼성혈의 현재 모습

 

【해석(解釋)】 (8)

憶昔神人開國初(억석신인개국초) 옛날 떠올리면, 삼신인이 처음 나라 세울 때

山從游獵水從魚(산종유렵수종어) 산 따라 사냥하고, 물 따라 고기잡이했을 터.

身如野鶴無歸着(신여야학무귀착) 몸은 들판 학처럼 한곳에 귀착할 곳 없었고,

地濶天高未有廬(지활천고미유려) 광활한 천지간에 미처 초가도 없었으리라.

※ 운자 : 평성(平聲) ‘魚(어)’운 - 初, 魚, 廬

 

【해설(解說)】

<그림 (14)> 삼양동 선사유적지에 전시된 가상 공간 - 선사시대 제주인의 생활상

 

<그림 (15)> 삼양동 선사유적지 * 사진 출처 : 《탐라》(국립제주박물관, 2018)

 

【해석(解釋)】 (9)

石函當日來何處(석함당일래하처) 석함이 당도한 날, 그게 어느 곳에서 왔던고,

知向郊原播稷黍(지향교원파직서) 이내 들로 나가 곡식 파종법 알아내었네.

歲久朱陳成一村(세구주진성일촌) 오랜 세월 동안 주진(朱陳)같은 집성촌 이뤄

子孫乃爾多如許(자손내이다여허) 마침내 자손들 이처럼 많아졌으리라.

※ 운자 : 상성(上聲) ‘語(어)’운 - 處, 黍, 許

 

【해설(解說)】

제주의 고(高) ‧ 양(梁) ‧ 부(夫) 삼신인(三神人) 후손들의 번창함을 두고서 중국의 주진촌(朱陳村)과 유사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림 (16)> 주진촌 표지석

 

조선조 광해군 때 학자인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제26권) <한정록(閒情錄) ‧ 고일(高逸)>편에 보면, 주진촌(朱陳村)의 유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곧 “중국 서주(徐州) 풍현(豊縣)에서 동남으로 1백 리쯤 되는 깊은 산중에 있는 이 주진촌이란 마을은 그곳 민속이 매우 순박한데, 고을에는 오직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씨만이 살아 대대로 혼인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唐)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주진촌(朱陳村)> 시 34운(韻)을 소개하면서, “살아서는 주진촌 사람이요.[生爲陳村人] / 죽어서도 주진촌 진토라네.[死爲陳村塵]”라 했고, 송(宋)대의 소식(蘇軾)의 시 <주진촌가취도(朱陳村嫁娶圖)>란 시를 소개하면서, “내 지난날 주진촌의 관리가 되어[我是朱陳舊使君] / 농사를 권하면서 행화촌을 찾았네.[勸農曾入杏花村] / 요즘의 그곳 풍물 어찌 그리랴[而今風物那堪畫] / 고을 아전들 돈 내라고 한밤중에도 문 두드리네.[縣吏催錢夜打門]”라고 했다.

 

【해석(解釋)】 (10)

星茫初動雞林天(성망초동계림천) 객성(客星) 첫 움직임 경주 하늘에 보일 때

已艤耽津一葉船(이의탐진일엽선) 탐진에 이미 배 한 척, 닻을 내려 머물렀네.

恰似老人朝北斗(흡사노인조북두) 흡사 노인성이 북두칠성을 조현(朝見)하듯

從今始與通人烟(종금시여통인연) 이로부터 비로소 사람 사는 기척이 통했다네.

※ 운자 : 평성(平聲) ‘先(선)’운 - 天, 船, 烟

 

【해설(解說)】

여기서 ‘(남극의) 노인성이 북두칠성을 조현(朝見)함’의 표현은 결국 남쪽 나라 탐라를 노인성에 빗대고, 북쪽에 있는 신라를 북두칠성에 비유해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당(唐)나라 때 두보(杜甫)가 쓴 <두상공의 막부로 가는 이비서를 전송하며[送李八祕書赴杜相公幕府]>란 시에 보면, “남극의 별 하나 북두칠성을 조현(朝見)하니[南極一星朝北斗], 오색구름 무리져 모인 곳에 삼태성이 있다네.[五雲多處是三台]”라고 했다. 결국 ‘老人朝北斗(노인조북두)’는 ‘南國一星朝北斗(남국일성조북두)’와 같은 뜻의 표현인 셈이다.

 

【해석(解釋)】 (11)

好爵旋封兄及弟(호작선봉형급제) 좋은 작위, 형과 아우에게 번갈아 봉해지니

榮還故國傳來裔(영환고국전래예) 영예롭게 고국에 돌아와 후예들에게 전했네.

梯航款叩不辭頻(제항관고불사빈) 산 넘고 물 건너며 잦은 조공 사양하지 않아

朝事新羅暮百濟(조사신라모백제) 아침엔 신라요, 저녁에는 백제를 섬겼다네.

※ 운자 : 거성(去聲) ‘霽(제)’운 - 弟, 裔, 濟

【해설(解說)】

탐라 삼신인의 15대 후손인 고후(高厚) ‧ 고청(高淸) 형제 세 사람이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에 닿았던 게 신라가 융성하던 때였다고 하면서, 신라 왕이 고후에겐 성주(星主)를, 고청에겐 왕자(王子)란 칭호를 내렸고 막내에겐 도내(都內)라고 일컬었다고 했다.

《동국여지승람》 <제주목(濟州牧) ‧ 건치연혁(建置沿革)>조에 실려 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연 설명에서 성주(星主)라 함은 이들 탐라 사신의 찾아옴을 객성(客星)의 움직임에 빗대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함은 어느 정도 이해할 법하다.

이에 비해 왕자(王子)라 칭함에 대한 설명에 보면, 왕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게 해서 자기 자식과 같이 사랑하게 되어 그렇게 호칭하게 되었다고 함은 이례적이다.

보통 ‘과하지욕(胯下之辱)’이라고 하면 한나라 때 명장이었던 한신(韓信)의 수모를 당함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방식이 고대사회에서 행해졌던 상대방의 믿음을 확인하는 절차 의례라도 되는 건지는 분명치 않다.

<그림 (17)> 과하지욕(胯下之辱)을 상상해 그린 삽화(작자미상)

 

【해석(解釋)】 (12)

松岳龍興掃黑金(송악용흥소흑금) 송악(松岳)에 용(龍) 일어나 흑금(黑金) 쓸어내니

預先歸去獻其琛(예선귀거헌기침) 앞을 예감해 돌아가 진귀한 공물(貢物) 헌상했네.

奈何變作逋逃藪(내하변작포도수) 어찌해 도주하는 포로들의 숲으로 변했던고.

流入胡元染惡深(유입호원염오심) 오랑캐 원(元)나라 유입되어 오염시킴 심각했네.

※ 운자 : 평성(平聲) ‘侵(침)’운 - 金, 琛, 深

 

【해설(解說)】

오랑캐 원(元)나라의 문화가 유입되어 그 오염이 심각함을 작자는 지적하고 있다. 제주에 남아있는 그때의 유적을 대표하는 게 사찰의 존재이다. 원나라 시대에 제주에 중창(重創)된 것으로 알려진 3대 사찰이 바로 수정사(水精寺) ‧ 법화사(法華寺) ‧ 원당사(元堂寺)이다.

현재 남아 전해지는 원당사지 오층석탑은 현무암 재질의 유일한 석탑으로 구전에 따르면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끌려갔다가 순제(順帝)의 총애를 받아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던 기황후(奇皇后)와 관련이 깊다.

<그림 (18)> 원당사지(元堂寺祉) 오층석탑(五層石塔)
* 사진 – 필자 촬영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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