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6-2)-소총(篠叢) 홍유손(洪裕孫)의 ‘제주 유배시’ 2수(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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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6-2)-소총(篠叢) 홍유손(洪裕孫)의 ‘제주 유배시’ 2수(1498)
  • 현행복(전 제주특별자치도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4.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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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6>

6. 소총(篠叢) 홍유손(洪裕孫)의 ‘제주 유배시’ 2수(1498)

 

<참고자료>

○ <금강산에 제함[題金剛山]>

【원문(原文)】

<그림 (5)> 홍유손(洪裕孫)의 ‘제금강산(題金剛山)’
* 출처 : 홍유손 문집 《소총유고(篠叢遺稿)》 (하편)

 

【판독(判讀)】

題金剛山金剛山一支蔓延於百許里 雪岳山若如金剛 故曰小金剛 此則題於小金剛

生先檀帝戊辰歲 眼及箕王號馬韓 畱與永郎遊水

府 又牽春酒滯人間

 

【해석(解釋)】

題金剛山(제금강산) ○ 금강산에 제함

- 금강산 한 지맥이 백리 가량 널리 뻗어있는데, 설악산이 금강산과 닮아있기에 소금강이라 하는데, 이 시는 소금강에 제한 것이다.

生先檀帝戊辰歲(생선단제무진세) 내가 전생에 태어나길 단군왕검 무진년이어서

眼及箕王號馬韓(안급기왕호마한) 눈으로 기자(箕子)를 만나보아 마한이라 했네.

畱與永郎遊水府(유여영랑유수부) 영랑과 함께 수부에서 뱃놀이하며 머물다가

又牽春酒滯人間(우견춘주체인간) 또 봄술을 차고 와서 인간 세상에 머무르네.

※ 운자 : 평성(平聲) ‘寒(한)’운 - 韓, 평성(平聲) ‘刪(산)’운 - 間

 

【해설(解說)】

이 시가 세상에 소개됨은 소총 홍유손의 문집인 《소총유고(篠叢遺稿)》에 실려 전하지만,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문집인 《추강집(秋江集)》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도 실려 전한다.

이 밖에도 이 시가 실린 역대 문헌으로는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인사부(人事部) ‧ 수요(壽夭)>편, 임보신(任輔臣)이 찬(撰)한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이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 생산(生産)>조에도 제각기 실려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첫째 구에 대한 해석은 번역자마다 제각기 달리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生先(생선)’이란 대목, 이 두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게 최대 관건(關鍵)이자 최고 난제(難題)이다.

이 부분에 대한 풀이로는 대개 ‘먼저 태어나서’라고 옮김이 일반적 경향이다. 그런데 이수광(李睟光)의 국역본 《지봉유설(芝峯類說)》(을유문화사, 1975)의 남만성(南晩星)의 해석은 이와는 다르게 ‘내가 전생(前生)에 태어나기는’으로 풀이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전생에 태어나기로는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 무진(戊辰)년과 같은 해이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시문 속에 홍유손 스스로 자신의 생년(生年)을 명문화해뒀다는 사실이다. 홍유손 자신이 무진생(戊辰生)이라고 한다면, 그는 세종 30년, 무진(戊辰, 1448)의 해에 태어남을 스스로 밝혀놓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림 (6)> 홍유손 시(부분 확대)

 

<그림 (7) 이수광 저(남만성 역) 《지봉유설》 표지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홍유손’의 항목을 찾아보면, 그의 생몰연대를 ‘1431년(세종 13년)~1529년(중종 24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사실로 인정한다면 그의 향년(享年)은 백수(白壽)에 해당하는 99세가 된다. 역대 문헌에 소개된 홍유손의 생몰연대 기록들을 모아 일별해 보면, 그의 몰년이 중종 24년(1529)임에는 대개 일치하면서도 생년은 제각기 달리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90대 -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2) 80세 –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3) 78세 –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으로 실로 다양하다.

그런데 앞서 <금강산에 제함>이란 시문을 참조해서 보면 홍유손은 그의 생몰연대가 ‘1448년(세종 30년)~1529년(중종 24년)’으로서 향년 82세가 되는 셈이다.

참고로 홍유손의 생몰연대와 관련해 특별히 염두에 둘 만한 점이라면, 그와 교류했던 스승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나 선배 동료 김시습(金時習, 1435~1493)보다 홍유손이 앞설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기준 삼아서 소총 홍유손의 인생 후반의 삶을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要約)된다.

홍유손은 나이 51세 나던 해인 연산군 4년(1498) 9월에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를 왔고,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던 해인 중종 원년(1506) 9월에 해배(解配)되어서 만 8년간 유배인의 삶을 살았다.

이듬해 60세가 되던 해에, <존자암개구유인문(尊子庵開構侑因文)>이란 글을 지어 발표한 후, 제주를 떠났다. 그 후 72세 되던 경오(庚午, 1519)년에 회시(會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었고, 기축(己丑, 1529)년 4월 5일에 별세해 그의 향년은 82세이다.

홍유손의 살아생전 시우(詩友)이면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었던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은 자신의 저술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서 홍유손을 두고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홍유손의) 사람됨이란, 문장으로 치면 칠원(漆園) 장자(莊子)와 같았고, 그의 시 세계는 산곡도인(山谷道人) 황정견(黃庭堅)을 섭렵했으며, 그의 지혜로운 재질은 촉한 승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재주를 지녔고, 그의 해학적 행실은 만천(曼倩) 동방삭(東方朔)과 같았다.”

그에 대한 이런 찬사(讚辭)가 결코 과장되거나 허황한 말이 아님을 우리는 그가 남긴 <존자암개구유인문(尊子庵開構侑因文)>이란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 당대(唐代)의 유명한 문장가인 유우석(劉禹錫)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산은 높음에 있지 않으니 신선(神仙)이 있으면 곧 유명하고, 물은 깊음에 있지 않으니 용(龍)이 있으면 곧 영험하리라.[山不在高 有僊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이러한 신선과 용의 특성을 홍유손이 남긴 <존자암개구유인문>이란 글의 문장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찬탄의 글이 나올 법도 하다.

“홍유손이 남긴 문장이란, 그 사유(思惟)의 기발한 발상이 마치 신선(神仙)의 발자취인 양 신출귀몰(神出鬼沒)하기만 하고, 그 문장 표현의 절묘한 기법이 흡사 바람을 몰고 와 변화를 일으키는 용(龍)의 수완 마냥 변화무쌍(變化無雙)하다.”

결국 홍유손은 15세기 말에 제주에 들어와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배의 삶을 살면서도 제주와 관련된 소중한 글들을 여럿 남겼다.

이제 5백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가 남긴 그림자[影]와 메아리[響]의 불씨는 여전히 사그라들 지 않고 진정 한라산을 품어 안은 조선 최초의 문장가임을 각인시켜주며 절로 우리 앞에 우뚝하게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끝>

 

 

<역주(譯註) 모음>

1) 홍유손(洪裕孫, 1448~1529)은 자가 여경(餘慶)이고, 호가 소총(篠叢)이며, 또 다른 호가 광진자 (狂眞子)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서리 홍순치(洪順致)의 아들이다. 가세(家世)가 청빈하여 의복이 남루하긴 했어도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하였고, 성품이 자유롭고 활달하여 구속되지 않았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평소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 등과 교류하며 시문을 주고받곤 했다. 연산군 4년(1498)에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와서 8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중종 원년(1506)에 일어난 중종반정 때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중종 2년(1507) 초봄에 제주에서 <존자암개구유인문(尊子庵開構侑因文)>이란 글을 써서 세상에 알렸다. 그 후로 진사가 되었다는 기록만 전할 뿐 그의 남은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 瘴雲㴱(장운심) : 장기(瘴氣)를 머금은 구름이 깊다. 여기서 ‘㴱(심)’은 ‘深(심)’의 고자(古字)이다.

3) 鬢邊(빈변) : 살쩍 주변(周邊). 귀밑털 주위.

4) 光陰(광음) : 세월. 시간.

5) 奇花異卉(기화이훼) : 기이한 꽃과 풀. 보기 드문 화초. 기화이초(奇花異草).

6) 幽思(유사) : 조용히 생각에 잠김. 또는 깊은 생각.

7) 細吟(세음) : 고요히 읊조리다.

8) 麥飯(맥반) : 보리밥.

9) 盛㙧(성류) : 큰 사발. 여기서 ‘㙧(류)’는 ‘塯(류)’의 본자(本字)로서 밥을 담는 질그릇인 뚝배기 사발을 지칭함.

10) 麻衣掩骼(마의엄격) : 삼베옷으로 앙상한 뼈를 가리다.

11) 竆林草(궁림초) : 외진 숲의 풀. 여기서 ‘竆(궁)’은 ‘窮(궁)’의 본자(本字)이다.

12) 㪅發新芽(경발신아) : 다시 새로운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다. 여기서 ‘㪅(경)’은 ‘更(경)’과 동자(同字)이다.

13) 他鄕勝故鄕(타향승고향) : “타향이 고향보다 낫다.” 이 말의 출처는 당(唐)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시 <동생의 소식을 듣고서[得舍弟消息]>인데, 곧 “난리 뒤이니 뉘라서 돌아갈 수 있으랴![亂後誰得歸], 전쟁 없는 타향이 난리통 고향보다 나을 것이다.[他鄕勝故鄕]”라고 했다.

14) 官柳(관류) : 본래 관부(官府)에서 심은 버들을 말한다. 또는 흔히 큰길 가에 서 있는 버들을 말하기도 한다. 당(唐)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처성의 서쪽 들판에서 이판관 형과 무판관 동생을 성도부로 전송하며[郪城西原送 李判官兄 武判官弟 赴成都府]>란 시에 보면, “들꽃들은 곳곳에 피고[野花隨處發], 길가 버들은 줄지어 새롭네.[官柳著行新]”라고 했다. 예로부터 이별할 때 버들을 꺾어주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대개 버들의 한자어 ‘柳(류)’가 머묾의 한자어 ‘留(류)’와 상통한다고 보는 관점에서 나왔다고 보는 설도 있다.

15) 挐山高崒屼(나산고졸올) : 한라산(漢拏山)이 높고 험준한 모양. 여기서 ‘挐山(나산)’은 곧 한라산(漢拏山)의 준말로 쓰였다.

16) 送眸(송모) : 눈길을 보냄.

17) 微茫(미망) : 흐릿한 모양. 모호(模糊)한 모양.

18) 麗譙(여초) : 화려하면서도 높은 누각을 두고 이름이다. 이의 용례로《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편에 보면, “임금님께서는 성대히 ‘높은 누각[麗譙]’ 사이에 군대를 진열하려는 생각을 말아야 할 것입니다.[君亦必無盛鶴列於麗譙之間]”라고 함에 보인다.

19) 紅旗侍胥(홍기시서) : 직역하면 ‘붉은 깃발 아래 모시는 아전’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홍기(紅旗)’란 장군이 지휘하는 깃발로서, 공을 세우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홍기(紅旗)’를 두고서 제주 목사를 상징하는 말로 보면, ‘시서(侍胥)’는 현감의 벼슬, 곧 ‘정의 현감’을 지칭하는 말에 해당할 법하다.

20) 蔓延(만연) : 덩굴이 뻗어나가듯이 끊임없이 이어짐. 널리 퍼짐.

21) 戊辰歲(무진세) :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고조선을 건국한 기원전(紀元前) 2333년을 지칭함.

22) 箕王(기왕) :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왕. 곧 기자(箕子).

23) 畱與永郎(유여영랑) : 영랑(永郎)과 함께 머물다. 영랑(永郞)은 신라 때 네 선인(仙人) 중의 한 사람이다. 강원도 통천(通川)의 바다 가운데 있는 돌무더기 앞에 총석정(叢石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이곳의 전설에 의하면, 신라 때 술랑(述郞), 남랑(南郞), 영랑(永郎), 안상(安祥)의 네 선인이 일찍이 이곳에서 놀며 구경을 했다고 하여 뒤에 이곳을 사선봉(四仙峯)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畱(류)’는 ‘留(류)’의 본자(本字)이다.

24) 水府(수부) : 수신(水神)이나 용왕이 사는 곳. 용궁(龍宮). 물이 깊은 곳.

25) 春酒(춘주) : 봄에 빚은 술. 달리 삼해주(三亥酒)라고도 불리는데, 음력 정월 상해일(上亥日)에 찹쌀가루로 죽을 쑤어 누룩과 밀가루로 반죽한 다음 독에 넣고, 다시 중해일(中亥日)에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쪄서 독에 넣고, 하해일(下亥日)에 또 흰쌀을 쪄서 독에 넣어 빚은 술을 두고 이름이다.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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