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노리손이(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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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노리손이(큰)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4.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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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426.6m 비고: 52m 둘레: 1,044m 면적: 69,733㎡ 형태: 원추형

노리손이(큰)

별칭: 노리오름. 장손악(獐孫岳). 큰노리손이. 장악(獐岳)

위치: 봉개동 산294-22번지

표고: 426.6m 비고: 52m 둘레: 1,044m 면적: 69,733㎡ 형태: 원추형 난이도: ☆☆

 

 

 

노루가 떠난 자리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고 묘지들이 들어서 있어...

 

수백 개의 제주도 오름들은 숫자만큼이나 명칭도 다양하며 그 유래 역시 여러 가지로 나오는데, 지역 명칭이나 외형을 두고서 붙은 것들을 비롯하여 동물의 모양새에 연유한 오름들도 제법 많은 편이다. 외형을 두고서 동물에 빗대어 명칭이 정해진 오름들 중에는 사슴과 노루가 특히 많은 편이다.

이 중 노루와 관련한 오름은 노리손이와 노리오름 등이 대표적이며, 노리는 노로와 함께 노루를 뜻하는 방언으로서, 노리손이의 ‘손’은 쏘다(쏜다) 등을 나타내는(관형어) 말로 이 오름 주변에 노루가 많아서 사냥하기에 좋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한자 역시 장손악(獐遜岳)이나 장악으로 표기를 하고 있으며 제주시 연동에도 같은 맥락이면서 동명의 오름인 노리손이(노로생이)가 있다.봉개동의 노리손이는 크고 작은 두 산 체가 이어지면서 큰, 족은으로 구분을 하고 있으며, 짐작하건대 두 오름 사이의 촐왓과 빌레를 포함하는 일대가 노루들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높지는 않지만 봉긋하게 솟은 두 오름 사이로는 넓은 초지와 숲으로 이뤄져 있으며, 두 산 체가 각각 원추형이기는 하나 등성이 맞닿은 채 북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가 이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동쪽 등성은 비교적 가파른 편인데 일대에 쓰레기 매립장이 조성되면서 기슭 쪽으로는 깊은 협곡을 이룬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상의 일부는 숲이 울창하여 가려지지만 해안선을 따라 삼양의 원당봉을 시작으로 동쪽의 서모봉과 괴살메(묘산봉)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다. 반대편으로는 봉개권의 인기 있는 오름들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가 있어 높이에 비하여 대체적으로 전망이 좋은 편이다.북쪽의 기슭과 등성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묘지가 많은 편인데 일부는 불법으로 조성이 된 곳도 있다.

노루들이 노닐던 자리에도 무덤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변화가 이뤄졌기에 노리손이 형제는 자신들을 터전으로 즐겼던 노루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 일대에서 노루의 모습이나 컹컹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데, 아마도 저들의 영역을 빼앗긴데 대한 한풀이라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노리손이 탐방기-

 

9월의 주말 이른 시간에 찾은 야영장 주변은 아직 텐트 속을 차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낮게 깔린 구름과 잔뜩 흐린 날씨라서 탐방의 묘미가 떨어질 것은 뻔한 사실이지만 예정대로 진행을 했다. 오름 인근에는 제주시 청소년 야영장과 한라 경찰 수련원이 있는데 이곳 진입로를 통하여 들어가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에 이 루트를 선택했다.

등성과 굼부리의 일부를 포함하는 곳에는 일찍이 탐방로가 개설되었지만 지금은 무성한 수풀들이 차지를 하여 한 걸음 나아가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여름이라는 시기가 손을 쓰는데 어려움을 주겠지만 야영장과 수련원이 들어선 것을 감안한다면 누군가는 정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야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수련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구색을 갖추면 좋으련만 엉성하고 흐트러진 모습에 다소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탐방로가 있었던 자리에는 초입지에만 발길의 흔적이 있을 뿐 곧바로 수풀 더미를 지나야 했다.

이만한 입지의 조건이면 오름 산책로의 구성을 잘 정비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텐데 사뭇 아쉬운 일이다. 수풀이 무성한 곳을 지나다 작은 숲을 지나 다시 작은 평원을 만났다. 일부 거친 벌판이 이어지지만 이 틈을 이용하여 얼굴을 내민 야생화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무질서 속의 자유는 차라리 자연 미가 더할 것이라 위안을 삼으며 진행을 하노라니 새벽이슬을 머금은 층층이 잔대가 얼굴을 내밀며 정지 명령을 내렸다. 벌써 잔대의 계절이 왔는가. 나약하고 가녀린 게 멈추라는 호령은 큼직하게 내지르는데 차마 거역을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여름을 즐기던 이질(이질풀)은 이제 가을을 향하여 시샘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야생과 생존의 법칙을 터득한 만큼 좀 더 화려함을 간직한 채 9월 정도는 가볍게 부여잡을 것이다. 달맞이꽃도 합세를 하였는데 흐린 날씨였지만 고개를 떨구지 않고 앙증맞게 치부까지 드러냈다.

 

이슬을 맞은 얼굴을 말리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 풀숲으로 지붕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이렇듯 계절 야생화들과의 만남이 이뤄지면서 더러 흥미롭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이내 반전이 되고 말았다. 길은 그렇다 치고 노리손이를 향하여 전진을 할수록 방해꾼들의 횡포가 심하여 진퇴양난이 되고 말았다.

이보다 더한 가시덤불을 헤치며 다닌 생각을 하면 별거 아니지만 젖은 수풀을 헤치는 과정이 힘들기만 하였다.억새왓을 지나니 이번에는 어디서 굴러먹던 망초 녀석들이 떼거지로 덤벼들었다. 여름 한 철 텃새를 부리던 망초 부대는 심술이 대단하여 지나는 내내 쉴 새 없이 물을 떨어뜨리며 반항을 했다.

키재기를 먼저 하자는 아우성에 못 이겨 후다닥 지나다가 카메라 렌즈까지 물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엉성하고 자유분방하게 뻗은 마(참마)의 줄기와 꽃을 발견하고 다시 걸음을 멈췄다. 이미 꽃은 질 시기이지만 이슬이 맺혀 촉촉하게 드러난 싱그러운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출신 성분도 성도 다른 밸랑귀(청미래 덩굴)가 함께 꾸민 인테리어는 다소 허접하지만 두 눈을 빼앗기에는 너무 충분했다. 여름의 자연은 발길이 어려운 대신 이런 볼거리를 안겨줬기에 결코 가난한 탐방이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정상부로 향하는 소나무 숲은 마치 작은 솔동산처럼 아기자기하고 부드러워서 거친 수풀을 헤치던 과정과는 상황이 달랐다.

수풀들도 짙은 솔 향과 날카로운 푸른 잎으로 잡동사니들의 출입을 방어하는 모양새였다. 그보다는 정상부 등성에 붉은 스코리어와 검은 화산재가 보일 정도니 감히 터전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떨어진 솔잎을 밟으며 도착한 정상부 역시 허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추형의 화산체라고는 하지만 정상에는 평평하게 이뤄진 공간이 있다. 삼각점과 벤치 그리고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있다. 출발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해도 너무했다.이곳에서 북동향의 풍경은 그래도 올라온 자들에게 수고한 보답을 안겨주고 기분을 추스르기에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건만 날씨의 영향으로 시계는 흐트러지고 말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건 쓰레기 매립장의 굴뚝과 건물이 고작이었고 반대편 방향의 봉개권 오름들 역시 날씨의 방해를 업고 숨어버렸다.투덜거리기보다는 다음을 기약하며 큰 노리손이를 내려가려 할 즈음 어디선가 노루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컹......

보기답지 않게 듣기 싫은 화음으로 질러대는 소리는 아마도 저들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알고 반항이나 경계를 알리는 표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족은 노리손이를 향하는 과정이라도 가능한 조용하고 슬며시 이동을 하겠노라고 중얼거리며 진행을 이어갔다.(족은 노리손이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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