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녹하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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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녹하지악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4.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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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620.5m 비고: 121m 둘레: 2,315m 면적: 340,236㎡ 형태: 원추형

 

녹하지악

별칭: 필봉(筆峰). 녹하지악(鹿下旨岳). 녹하지오름. 녹하지산

위치: 중문동 산5번지

표고: 620.5m 비고: 121m 둘레: 2,315m 면적: 340,236㎡ 형태: 원추형 난이도: ☆☆☆

 

 

사슴의 무리들이 노닐던 자리에는 골프클럽이 생기면서 노루조차 외면하고.....

 

거린사슴(오름)과 더불어 사슴을 토대로 명칭이 붙은 오름으로서 녹하지오름이나 녹하지산 등으로도 부르지만 보통은 녹하지악이라고 한다. 녹하(鹿下)는 사슴을 지칭하며 한라산 기슭의 사슴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와 이곳에서 노닐었다는 데서 유래를 했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사슴들의 무리가 많았던 때에 겨울이 되면 이곳으로 내려와서 지냈다는 설에서 연유를 하고 있다.

제주도 오름 명칭의 일부가 그러하듯 구전되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곳 또한 그런 셈이다. 가까운 곳에 거린사슴(오름)이 있어서 이를 연계하여 녹하지로 명칭이 정해졌을 수도 있다. 행여나 과거에는 그런 장면이 목격이 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사슴은 둘째하고 노루의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다.어쩌다 노루가 보이거나 컹컹거리는 소리라도 들릴 만 하건만 이를 대신하여 지금은 오름을 둘러서 조성된 골프장이 있기에 골퍼들의 모습과 소리만이 이어진다.

명칭과 달리 이 산 체는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먼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더 볼품이 있어 보인다. 피라미드처럼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우면서 우뚝 솟은 모습에서 특별함을 느끼게 되고 보통의 오름들과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러한 형세를 두고 붓끝을 연상하여 필봉(筆鋒)이라고도 했으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녹하지 자체를 사슴에 비유했지만 행여 사슴이나 노루의 모양새로 추측을 한다면 쏜살같이 달려가는 형세가 어울릴 법하다.

계곡을 이룬 북서 사면은 경사가 심하고 가파르며 다양한 활엽수림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남동 사면은 완만하게 이어져 있으며 소나무와 삼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잡목 들이 자라고 있다. 어떻든 녹하지악 주변은 골프클럽이 생겨나면서 과거와 달리 많은 변화가 이뤄진 때문에 자연 미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상 출입이 무난한데다 워낙 전망이 좋아 탐방의 묘미가 있으며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환경적인 여건이 좋은 편이다.

사슴의 무리들이 떠나갔고 노루들은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외면하지만 사람들에게마저 버림받은 산 체는 결코 아니다.인기의 정도를 떠나서 녹하지악을 찾아 정상을 오르내리는 동안에는 언제나 반전이 이뤄진다. 봄에는 진달래가 반겨주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어우러지고 가을에는 억새 군락지가 반겨준다. 탐방로를 지나는 동안에 삼나무와 소나무 밭을 지나는 등 환경의 변화가 이뤄지면서 자연의 깊은 맛도 풍겨난다. 정상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그야말로 최고의 전망대가 되어 실컷 풍경 놀이를 할 수가 있다.

 

해안 쪽은 물론이고 영실기암과 한라산이 사정권 안에 들며 이 주변을 에워싼 오름 군락들이 실루엣처럼 펼쳐진다.한라산을 마주하여 거슬러온 마파람이나 멀리 해안을 따라 이동을 해온 샛바람이 어우러지면서 바람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행여 구슬땀이라도 흘린 오르미들에게는 청정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기에 더없이 좋을 수밖에 없다.비고(高)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적 탐방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높이인 121m로서 원추형 화산체이다.

외형상으로 나타나는 녹하지악은 중심을 잃은 삼각봉처럼 끝이 뾰쪽하여 필봉이라는 별칭을 연상하기에 너무 충분하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원추형의 모습이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오히려 등정의 어려움을 예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은 쉬운 편이며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심한 경사도 없는 편이다. 오름 기슭에는 세 개의 구릉이 형성되어 있으나 탐방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숙대낭(삼나무)밭을 지나고 억새왓을 거쳐서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는 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반하게 됨은 당연하다. 오름 주변이 골프장 등 많은 변화가 이뤄진 것에 비하면 그만큼 탐방로는 자연 그대로인 셈이다. 또한 특별한 인위적인 구성이 없는 만큼 찾는 이들로서는 자연 미를 더 느낄 수가 있다

 

.-녹하지악 탐방기-

평화로를 기준으로 할 때 제2산록도로를 지나면서 레이크힐 골프장을 찾아가는 것이 녹하지악을 만나는 방법이다. 다른 곳으로 진입을 하려 해도 지금은 골프장이 오름을 빙 둘러서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애써 오르미들의 출입을 막지 않고 있으며 선뜻(!) 주차장 이용도 허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크스 힐 골프장 내 주차장까지 들어간 후 신세를 지면서 초입지 방향으로 가면 된다. 1번 홀 방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안내 팻말이 보인다. 초입지의 삼나무 지대 통과를 시작으로 매트나 데크 등의 인위적인 시설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따라서 오르내리게 된다.

장소를 고려하고 이동성을 감안한다면 주변을 연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녹하지악 한 곳만 선택을 하는 것도 좋다. 심신을 추스르고 자연과의 호흡을 즐기는 것을 비롯하여 오름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뷰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계절과 날씨의 도움을 받아서 몇 번이고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봄기운을 느끼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모처럼 사슴의 무리들이 노닐던 곳을 찾았다. 익숙한 곳이지만 오름은 언제나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주기 때문에 이번에도 초행자의 기분으로 진입을 했다. 초입지에 들어서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숙대낭(삼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푸름을 간직한 채 높이 솟은 숙대낭들은 마치 이곳을 찾는 오르미들을 위하여 사열이라도 하듯 질서와 위엄이 있어 보였다. 겨울을 보내는 즈음이지만 숲은 깨어 있었고 지나는 동안만큼은 계절을 잊게 했다. 떨어진 숙대낭 잎들은 바닥을 차지하고 있을 뿐 인위적인 그 아무것도 없다. 바스락바스락. 사르륵 사르륵.....이미 떨어진지 오래된 잎들은 메말라 있어 등반화와의 마찰 소리를 크게 하였다.

레드 카펫이 부러울 리 없고 융단의 부드러운 바닥도 이보다 좋을 리 없다.몹시 고마웠고 사뭇 흥겨울 수밖에 없었다. 숙대낭밭을 지나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을 지나는 동안에는 솔잎과 솔방울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떨어진 솔방울 몇 개를 모아놓고 애써 허리를 굽혔다. 자연은 그렇게 여유와 행위를 위한 배려를 해줄 줄 안다.환경의 변화는 계속 이어졌다.

 

질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자연 미를 느끼는 데는 더한층 도움이 되었다. 수풀이 우거진 지역을 빠져나오면 오름의 제2능선인 억새 군락지에 도착을 하게 된다. 역시 변화가 이뤄지는 오름의 허리 부분인 셈이다. 이미 퇴색이 되고 마지막 작별의 순서를 이어가는 억새 띠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머지않아서 새롭게 여린 순으로 시작이 될 으악새(억새)들은 이제 슬피 울지 않고 흥겹게 노래할 거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좀 더 성숙한 시기에 찾았어야 했는데 서툰 계절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름의 허리에서 어깨로 향하는 지점은 드물게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로는 조릿대와 잡풀들이 차지를 했다.

여름내 푸름으로 주변을 가득 채웠을 잡초와 넝쿨들도 겨우내 동안만큼은 길을 막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이들이 푸른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면 흙 한 점을 보여주는 것조차 거부를 하게 된다.거친 숨소리 제대로 안 내면서 느리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철쭉 동산이다. 처음 찾은 곳도 아니 건만 정상 도착을 앞두고 애써 철쭉과의 만남으로 느린 진행을 했다.

정상과 그 주변은 철쭉 동산이라 해도 어울릴 만큼 여기저기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행여 사슴들의 터전이 되었을 주변이라 그 무리들을 위하여 곱게 단장을 했던 것은 어닐까. 철쭉들이 나래를 펼치는 4~5월이 되면 녹하지악은 그만큼 분위기도 덧셈이 된다.바람의 언덕이라 부르는 정상에 도착을 했다.심하게 바람이 불어댔다. 예상은 했지만 육신이 비틀댈 만큼 강하게 불었다.

눈물이 나고 콧물이 흐르게 하는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녹하지악의 정상부는 바람의 언덕이다. 한라산을 마주하여 거슬러온 마파람이나 멀리 해안을 따라 이동을 해온 샛바람이 어우러지면서 바람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계절을 달리하여 찾을 때 행여 구슬땀이라도 흘린 오르미들에게는 청정의 시원함으로 맞아주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

겨울이 질투하고 바람이 시기하였지만 결코 풍경 놀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름에 올라서 날씨와 관련하여 투정을 부리거나 짜증을 내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안 된다. 그러는 과정은 잠시 동안으로도 충분하다. 더 역정을 내봐야 자신만 손해가 되기에 포기와 진행의 결정을 가능한 일찍  하는 것이 당연하다.가장 높은 곳에서 더 높이 솟아오른 공용 기지국 무선설비(송신소) 시설물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 순간이 결코 오래지는 않았다.

그 옛날 이곳을 터전으로 사슴들이 노닐던 당시를 상상해 보면 그들은 외계인이 타고 온 비행 물체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에게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준 녹하지악으로서는 더러 아쉬움이나 서러움을 느끼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하물며 자신의 주변을 골프장으로 내어준 상황이기에 정도의 세기는 더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필요와 가치의 절대적인 부산물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선의 중심을 오름과 천연의 숲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름의 주변을 둘러 조성된 골프클럽은 끝내 한동안 두 눈을 뺏어버렸다. 지난 2002년에 개장을 한 레이크 힐스 골프장은 녹하지악의 주변을 둘러 조성이 되었다. 사슴이 노닐던 자리에는 노루조차 만나기 힘들고 골프장 내를 제외하면 사람들의 출입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이다. 근거리에 골퍼들의 행진이 이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샛바람이 정상부를 거치고 있지만 귓전을 다 막지는 않았기에 이따금씩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나이스 샷..  굿 샷... 그리고 바람소리가 함께 어우러졌다. 바람소리 때문에 서툴게 들리는 소리가 차라리 더 좋았다.멀리로는 산방산이 뚜렷하게 보이고 바굼지 오름(단산)이 함께 어우러진 채 눈 맞춤이 이뤄졌다. 최남단 마라도와 형제섬 등도 사정권 안에 들어왔지만 날씨의 협조는 인색했다.시선을 당기니 영아리(오름)가 주인공이 되고 한대오름까지 이어지는 군락들이 실루엣처럼 펼쳐졌다.

다른 방향의 해안 쪽으로는 섶(숲)섬과 문섬이 보이고 고근산과 서귀포 정경이 펼쳐졌는데 더 선명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라 여기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우측으로는 거린사슴(오름)이 우쭐거리듯 당당하게 보였다. 아마도 백록담을 중심으로 지냈을 사슴들 중 고급 직위를 가진 무리들은 거린사슴을 차지했을 거고, 녹하지악은 평민이나 보통의 무리들이 터전으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거린사슴과 좌측의 민머르(오름) 사이를 따라 이어가면 오백장군의 영혼들이 자리 잡은 영실 기암이 보인다. 그 너머로 백록담까지 선명하게 보이면서 저절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만한 풍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구태여 눈 덮인 한라산의 풍경까지 욕심을 낼 필요가 있겠는가. 

하산은 부득이 백(back) 코스이다.퇴색된 억새 군락지를 지나면서 왠지 허전하고 아쉬움의 정도가 커졌다. 봄날에 다시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리턴 매치가 이뤄지는 순번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흥겨운 걸음으로 대신했다.

사락사락...... 억새왓을 지나는 동안은 더 보무도 당당하게 진행을 했다.바지 깃과 억새와의 진한 불륜이 이어지며 가능한 더 큰 소리가 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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