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논오름(삼양)
상태바
[오름이야기]논오름(삼양)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04.18 0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고: 52.5m 비고: 13m 둘레: 461m 면적: 16,244㎡ 형태: 원추형

논오름(삼양)

별칭: 평안악(平安岳).

위치: 제주시 삼양동 558-1번지

표고: 52.5m 비고: 13m 둘레: 461m 면적: 16,244㎡ 형태: 원추형 난이도: ☆☆

 

 

변화로 인하여 놀이터로서의 입지나 평안을 논하기에는 어렵고...

 

산 체와 주변의 여건이 놀기에 적당한 곳이라 논오름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렇다 할 내력이나 유래를 찾아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구전되는 내용이나 일부 자료를 토대로 정리하거나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논오름 자체를 ‘논다’나 ‘놀다’ 또는 놀기에 적당한 곳이라서 명칭이 붙었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등성이 옆으로 묘와 비(碑)가 있는데 여기에는 평안악((平安岳)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묘한 일이다.

오름의 터전을 두고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망자를 향한 평안을 기리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그럴듯하면서도 아리송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과거와 지금의 환경과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 이를 말해주는 것 같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데다 자연적인 터전으로서 예전에는 놀기에 적당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세월이 지났고 주변 상황이 많이 변한 지금으로서는 그런 분위기를 추상할 수밖에 없다.

수풀이 우거진 곳과 짧게 자라난 잔디와 풀들이 어우러진 등성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의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놀이터로 적합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들이나 야산에서 계절마다 쉽게 채취할 수 있는 탈(산딸기)과 삼동, 볼레 등이 이 주변에도 있어서 이를 따 먹는 것을 겸하여 찾았을 수도 있다. 또한, 비석에 새겨진 내용 중에는 ‘답봉(答峰)’이라는 한자도 있지만 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주변 어디를 살펴도 논으로 이용을 했던 흔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산 체를 둘러 이어지는 어디에도 물이 고일만한 여건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논오름이라 부르게 된 이후에 부득이 한자로 표기를 했으리라 추측이 되었다. 삼양동은 해안을 포함하는 마을로서 쉼터나 휴식의 공간으로 적합한 곳이 많은데 왜 하필 이곳까지 필요로 했을까.

특히나 삼첩칠봉(三疊七峯)의 원당봉이 있는 만큼 구태여 먼 곳으로 이동을 하여 놀이터로 이용을 하였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리송할 뿐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접근성이나 현지 상황을 보더라도 휴식이나 산책을 하기에는 여건이 안 좋다. 사유지임을 확인 할 수 있듯이 기슭을 둘러 층을 이루는 밭으로 개간이 된지도 오래 되었다. 산 체의 특성이나 가치 또한 보통의 오름들과는 다르며 개간이 된 기슭 아래를 제외하고는 다소 거친 편이며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그러면서도 낮고 자그마한 산 체의 입지를 나무라지 말라는 듯 등성과 원추형의 정상부는 오름으로서의 할 바를 제공해준다. 13m에 불과한 비고(高)임에도 사방을 빙 둘러 전망을 할 수 있으며 과거에 비하여 많이 달라진 주변의 건물과 해안의 일부는 물론이고 한라산 일대까지 전망할 수가 있다. 개간과 더불어 원형이 사라지고 원당봉의 입지에 눌려 오름으로서의 가치는 다소 쳐지지만 삼양동 내에 위치한 화산체로서의 면모를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안덕면 화순리에도 동명의 오름이 있으나 명칭과 관련해서는 다른 의미의 산체이다. 화순리의 논오름은 논(答)이 있던 자리에 연유하여 붙여졌고, 삼양동 소재는 놀기 좋은 곳이나 평안(편안)한 환경을 빗대어 논오름이라고 했으니 같은 명칭을 두고도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논오름 탐방기-

 


마을 소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논오름 입구에 도착을 했다. 농로를 따라 이동을 한 만큼 마을과 인접한 곳이라고 느끼기에는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놀이터로서의 입지는 둘째하고 딱히 정해진 산책로도 없을 뿐만 아니라 표석이나 안내문조차 없었다. 밭 경계와 구역을 표시하는 돌담을 따라 여기저기 찾아봤으나 논오름으로 향하는 길목이 없어서 적당한 곳을 이용하여 기슭에 도착하니 밭이 나왔다.

오름 기슭과 아래로 이어지는 곳인 만큼 척박한 토양이 아니라서 그런지 농지의 대부분은 호박이 차지하고 있었다. 7월의 중순으로 향하는 시기라 호박잎은 바닥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노랗게 피어난 꽃들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농경지로 적합할 만큼 잘 단장이 되었지만 둔덕(돌무더기)을 가린 잡풀들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호박밭이다.

낮은 능선을 굽이굽이 개간을 하여 이뤄낸 농지는 몇 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었다. 땅 한 평이라도 더 개간을 하여 농지로 이용하려 했던 제주인들의 조냥정신과 개척정신을 엿보기에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아직 정상부까지는 더 가야 하지만 올라온 방향을 바라보니 삼양을 비롯하여 화북동의 일부도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기슭에서 정상 가까이 까지 개간이 된 오름이지만 등성의 일부는 잡목들이 차지하고 있어 원형을 살필 수가 있다.

여름을 맞아 성장의 진행을 이어가는 수풀들은 사람이 지나가는 어깨와 나란히 하는 것들도 있어 불편했지만 규모가 큰 편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헤치며 나아갔다. 등성 한 쪽에 묘가 있고 비석이 보여서 접근을 했다. 새겨진 내용 중에는 ‘답봉’이라는 한자도 있지만 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묘가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논오름이라 부르고 있었던 때문에 이를 표음화로 답봉이라 했으리라 짐작이 되었지만 주변 환경을 생각하니 다소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체의 크기와 높이가 그러하듯 보잘 것 없게 보였지만 남은 정상의 비고(高)점을 찾아 진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통의 오름에서 일컫는 탐방로는 둘째하고 크게 자란 수풀들과 일부 가시가 달린 잡목들까지 철저하게 방해를 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서 가늠으로 헤쳐 나가다 고랑처럼 움푹 팬 곳이 있어 가까스로 나뭇가지를 잡고 위기를 모면했다. 기슭 너머에 도착을 하니 밀감밭이다. 역시 오래전 농지와 빌레왓이었던 곳을 개간한 것으로 보였다.

한 쪽은 밭으로 개간이 되었고 사면의 한 부분은 밀감밭으로 변한 것이다. 비옥한 환경은 아닌 데다 제주의 북쪽임을 감안 한다 해도 품질이나 수확에 큰 문제는 안 되는 모양이다. 행여 기슭 아래에 논과 관련한 흔적이 있는지 바라봤지만 역시나 허탕이었다. 비고(高)점이라 여겨지는 곳을 오르려 했지만 난공불락이었다. 휘어지는 가지를 붙들고 정상에 발을 디디려 했지만 좀처럼 접근이 어려워 포기를 했다.

대신에 서 있을 수 있는 최고(高) 지점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가 있었는데 원당봉의 일부가 전망이 되었다. 산 체를 따라 펼쳐지는 여름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걸친 모습은 땡볕이 내리쬐는 날의 보잘 것 없는 발품에 다소 위안이 되었고, 진행하는 동안에 다소 불편함이 따라던 상황을 달래줬다. 기슭을 돌아 나오는데 재선충과 관련해서 훈증 처리를 한 모습이 보였다.

작은 산 체와 허접한 등성에 소나무 몇 그루 안 되는데도 이곳까지 솔수염하늘소의 횡포가 이어진 것이다. 뭐 먹어볼 게 있다고... 뭘 뜯어 먹어보겠다고..... 나쁜 솔수염하늘소 같으니라고. 맞은편 능선도 개간이 되었는데 역시나 호박이 전부였다.

여름 햇살을 받으며 아직은 성장의 진행을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서 둥근 호박들이 경작지 곳곳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유난히도 곱게 피어난 호박꽃 앞에 무릎을 꿇고 셔터를 누르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하늘도 내 편이고 구름도 내 편인데다 호박꽃도 내 편이었지만 논오름은 볼품이 없었고 거친 잡풀과 가시덤불들만이 이방인을 맞아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