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방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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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방일이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12.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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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20m 비고:20m 둘레:534m 면적:22,101㎡ 형태:원추형

 

방일이

별칭: 해맞이동산. 방일이동산. 방일봉(方日峰)

위치: 제주시 노형동 2093-1번지

표고: 120m 비고:20m 둘레:534m 면적:22,101㎡ 형태:원추형 난이도:☆☆

 

 

 

해맞이를 즐기던 봉우리의 한쪽은 도로로 빼앗기고...

 

방일(方日)이는 오름 외에 방일봉이나 방일이동산, 해맞이동산 등으로도 부른다. 이 일대 지형이 반달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월산이라고 했으며, 이 오름에 올라 해맞이를 했다고 해서 해맞이동산으로도 부른다.

오름이 있는 위치는 행정상 제주시 노형동에 포함이 되며 방일이가 있는 곳은 월산마을이다. 월산(月山)이라 함은 달을 보는 산이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달이 아니라 해를 보는 해맞이 동산인 것이다. 불과 20m의 비고(高)이면서도 해맞이를 했다는 것을 보면 주변의 지형과 대조를 이룬 것임을 알 수가 있는데 산 체는 낮은 등성으로서 원추형이며 분화구는 없다.

기슭과 등성의 일부에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묘도 몇 기가 있으며 사유지인 만큼 산 체의 일부는 개간을 하여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다. 낮은 산 체이기는 하나 모양새는 나름 둥그스름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고 하나 지금의 방일이는 절반의 동산으로 바뀌었다.

해송 몇 그루만이 무덤덤하게 등성을 지키고 있으며 능선을 따라 자생을 하는 덤불과 수풀들은 그 아픔과 슬픔을 아는 듯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자신의 반쪽을 도로로 내놓고 남은 등성과 능선을 지키려는 모습은 실로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그나마 남은 허리의 일부는 개간이 되어서 밭으로 사용을 하고 있어 해맞이 장소로서의 가치마저 사라진 상태이다.

해맞이 장소라는 전래에 걸맞게 보름달처럼 둥그스름 했던 방일이의 모습은 이제 절반이 잘려나가 실제 반달처럼 변해버렸다. 방일이가 있는 주변은 과거 '드르구릉'이라 부르던 웃드리(중산간) 마을이었다. 이 일대는 과거 제주 4.3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며 이로 인하여 마을 주민들은 피난과 피신 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이 사건으로 드르구릉 마을 전체를 불에 태웠으며 결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집단 학살과 화재 등으로 많은 이들이 숨져갔고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더 웃드리(중산간 지역)인 아흔아홉 골의 골머리 등으로 피신을 하였다.

드르구릉을 수호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해맞이 장소를 제공했던 방일이로서는 이를 지켜보면서 정든 주민들과 이별을 해야 했다. 그러한 슬픔을 지켜본 방일이로서는 과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으나 결국 자신도 절반의 살을 도로로 떼어 주는 아픔을 겪고 말았다.

 

 

 

-방일이 탐방기-

월산정수장에서 100m 정도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우측으로 낮은 산 체가 보인다. 오름이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여겨지며 무심코 도로만 생각하고 갈 경우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볼품이 없다. 하지만 이곳이 제주의 아픈 역사가 베인 곳이며 자신의 살을 도로로 내어준 현장이다.

오름의 서쪽은 캠핑장과 음식점이 있으며 북쪽 입구에 괴석들이 있고 저마다 명칭을 붙여놓았다. 누구에 의해서 언제 구성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일이의 허전함이라도 달래주려 했을까. 얼핏 봐도 사유지임을 알 수가 있었고 산 체가 낮기 때문에 특별히 어느 방향이 초입지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캠핑장과 음식점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면 서쪽 산책로 입구가 나오길래 선택을 하였다.

딱히 오름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한쪽 기슭은 개간이 되어서 경작지로 이용이 되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이 있어보였다. 행여 내성이 강한 유채 씨앗이라도 뿌려 이른 봄 노랗게 물들이면 볼품이 있고 좋으련만 한쪽에 쪽파가 자라는 모습이 보인 것이 전부였다. 몇 발자국 더 옮기니 봉우리 근처에 도착이 되었는데 소나무 몇 그루가 버티고 있고 나무를 따라 송악과 담쟁이 같은 식물들이 기생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솔잎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인 곳에는 잡초와 덤불들이 어우러진 채 허전함을 메우고 있었다. 그 틈을 헤집고 얼굴과 몸통을 내민 자금우가 겨울나기를 하면서 빨갛게 열매를 맺어 눈길을 끌었다. 겨울에 오름을 오르며 흔하게 만나지만 이 열매가 이토록 신선하고 빛나게 느껴진 날이 있었던가. 이들은 백량금과 더불어 겨우내의 긴 기간 동안 악천후를 이겨내며 주어진 임무를 다하게 된다.

그래도 정상인만큼 행여 하는 기대로 서부권을 살폈다. 흐린 날씨라서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중산간에 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보였고 전원형의 한적하고 평화스러운 모습이 펼쳐졌다.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빈약하고 허약해 보였지만 그래도 동부권의 전망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남짓은오름을 시작으로 괭이오름과 상여오름 등이 나란히 이어진 모습도 보였다.

행여 그 옛날 마을 사람들이 해맞이를 했다면 이 정도의 장소를 택하고서 하루를 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허접하다고 하기에는 가슴이 아프고 어수선하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아팠다. 재선충병으로 인하여 잘린 소나무 가지들이 뒹굴고 있고 메마른 가지에는 미쳐 날개를 펴지 못한 솔방울이 맺힌 채 있었는데 복잡하지고 빽빽하지도 않은 정상부의 소나무 몇 그루는 아예 잘려나갔고 붉은색으로 그 흔적만 표시되어 있었다.

 

방일이의 서남쪽 진입로는 평평하게 개간이 되어 있으며 그 넓이 역시 큰 규모인데 역시나 사유지로 보였다. 등성을 차지한 소나무들이 전부이지만 뒷동산도 좋고 해맞이 동산이라도 좋으니 남은 자취라도 잘 보존되기를 소망했다. 아침을 여는 해맞이 장소로서 빛을 잃었지만 방일이를 둘러싼 주변은 풍경이 좋은 편이다.

과수원과 농지를 비롯하여 전원주택과 큰 건물들도 멀지 않은 곳에 보였는데 경관이 좋고 공기가 좋은 곳임에 틀림이 없다. 행여... 오름의 허리 아래를 좀 돌아서 가도록 길이 났으면 안 되었을까. 반달보다는 보름달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지난다면 운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방일이는 유적지도 사적지도 아니다. 하지만 제주의 큰 아픔인 4.3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잃어버린 마을의 터이며 사라진 마을의 중심에 방일이가 있다. 절반을 잘라냈다고 해서 결코 지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진 방일이 옆을 지날 때는 숙연하고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잘린 부위를 바위로 막아 뒀고 곳곳에는 전선주가 세워져 있는데 복잡하게 이어지는 전선줄은 유난히도 요란스러워 보였다.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곳. 웃드리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해맞이 동산. 잃어버린 마을이지만 제주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 방일이는 이 모든 것들을 짊어진 채 남은 반 토막으로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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