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하나의 밥상과 같은 의미..동복리 소여도방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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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하나의 밥상과 같은 의미..동복리 소여도방사벽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0.12.0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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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안녕과 큰 사람이 나기 바라는 뜻에서 돌탑 쌓아

동복리 소여도방사벽
 

위치 ; 마을 해안에서 150m 정도 떨어진 바다
유형 ; 민속신앙(방사용 성벽)
시대 ; 조선

 


1850년 경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안녕과 큰 사람이 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테우를 동원해 10여일의 공사 끝에 이곳에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사각형의 돌담을 쌓아 만조시에도 항상 볼 수 있도록 하였다.http://www.jtnews.or.kr/ 당시 선민들은 동복리를 사람으로 생각해 이 작은여를 하나의 밥상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다른 해석도 있다. 주민 중에는 ‘주변에 크고작은 여가 많아 어선이 드나드는 데 지장이 많아 수위측정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또는 ‘바다에 근접한 집을 보존하기 위해 파도를 막을 생각으로 돌을 쌓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몇 가구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전부 동원한다는 것은 필연성이 떨어지고 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파도가 막아지고 있으며, 1971년 태풍으로 심하게 파손되자 다음해 3월에 곧 보수했다는 사실을 보면 풍수지리와 관련이 깊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톳이나 천초와 같은 해초 작업을 하고 실어오지 못한 때는 그 안에 저장해두며, 이는 바닷물이 올라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자료도 있다.(해녀박물관 해녀문화탐방 82) 또한 정방형으로 쌓아서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직접 가 보지 않아서 탑인지 울타리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제주도민일보(110914)에 따르면 동복리 출신 김○○씨(1918년생 男)의 증언을 토대로 소여도 방사탑은 소(牛)의 질병을 방지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고 했다.

옛날 어느 해엔가 마을에 소의 역병이 번졌고 마을 사람들은 소여에 돌탑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소의 역병이 북서쪽에서 들어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뭍의 돌을 통나무배에 싣고 소여까지 운반해가서 돌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는 소의 역병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작성 101208, 보완 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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