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산 사람을 묻었다는 고려장..회천동(서회천) 傳산이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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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산 사람을 묻었다는 고려장..회천동(서회천) 傳산이무덤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1.12.21 2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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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병으로 다 죽게 된 사람을 격리시키는 형태라고도 한다.

회천동(서회천) 傳산이무덤

 

위치 ; 제주시 회천동 1622번지
유형 ; 무덤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회천동_산이무덤

 

회천동 가는새마을 속칭 ‘덕생이’라는 곳에 ‘산이무덤’이라 부르는 특이한 무덤이 있다. ‘산이무덤’이란 산 사람을 묻었다는 말이다.

마을의 나이드신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고려장과 같은 것이라고도 하고, 돌림병으로 다 죽게 된 사람을 격리시키는 형태라고도 한다.

얼마간의 양식과 그릇을 함께 넣어 주었다가 무덤 구멍에서 연기가 나지 않으면 사망한 것으로 알고 확인한 다음 입구를 막은 것이 산이무덤이라고 하니,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도록 하는 고육지책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무덤의 형태를 보면 보통 무덤의 두 배가 넘음직한 크기의 봉분이 원형으로 되어 있고, 봉분 둘레에는 성인 무릎 높이의 폭 50cm 정도의 비교적 좁은 산담이 봉분에 바짝 붙여져서 둥글게 쌓아져 있다. 지금은 봉분 위에 커다란 소나무와 잡목들이 자라고 있어서 후손이 없이 버려진 무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임종해 주는 사람도 없고 관도 갖추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 그냥 그 자리에 묻혀야 했던 사람은 과연 언제, 누구였을까?

필자의 선친(1934년생, 서회천 거주, 2001)의 말로는 필자의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 연기가 나지 않으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입구를 막았다는 말에 대하여 ‘경 허였젠 허여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니, 적어도 1900년 이전의 일임은 틀림없으나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작성 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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