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마을 공유림(500평) 일부 학교림 기증.. 대서리 횡간분교장터
상태바
[향토문화] 마을 공유림(500평) 일부 학교림 기증.. 대서리 횡간분교장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8.07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횡간분교장이 운영되는 동안 도서 지역의 특수성으로 '장학선'이 있었다.

대서리 횡간분교장터
 

위치 ; 추자면 대서리 산105번지(횡간도길66)
시대 ; 대한민국(1951)

 

횡간도_학교터


횡간도는 대서리 추자항에서 배를 타고 30분여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섬의 모습이 비껴서 길이로 앉은 데 연유하여 빗갱이라고도 불리며, 제주시에서 북서쪽으로 52㎞ 해상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0.602㎢이다.

섬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각각 높이 130m와 170m의 산이 솟아 있고 두 산의 안부인 중앙 남쪽 해안 부근에 횡간마을이 있다. 횡간도는 발전소 앞과 마을 아래 등 두 곳에 선착장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선착장에서 마을 중심까지 가파른 비탈길을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린다.


1851년 주민들이 입도한 것으로 전해지며 1970년대 이전까지는 멸치잡이가 성행하였다. 2011년 현재 주민은 7가구에 9명이다. 주민들의 노령화로 밭은 거의 휴경 상태이며 어업 활동도 근해에서의 고기잡이나 해조류 채취 등으로 영세한 수준이다.


횡간도 학생들은 추자초등학교에 배로 통학하고 있었다. 1984년 횡간분교에서 작성한 학교 연혁을 보면 추자국민학교 횡간분교장 설립기성회가 조직된 해는 1951년 7월 1일이다.

한국전쟁 시기였지만 주민들은 1953년 마을 공유림(500평) 일부를 학교림으로 기증하는 등 분교장 운영에 힘을 보탰다. 추자국민학교가 펴낸 '추자학구향토지'(1987)에는 주민들이 자력으로 학교부지 60평을 매입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기성회는 8월 20일 가교사 목조건물(20평)을 지었고 열흘 뒤인 30일 4년제 1학급으로 횡간분교장 설립 인가를 받았다. 개교는 9월 9일 이루어졌다. 1954년 6학년제 1학급 인가를 받고 1956년에는 2학급으로 늘었다. 1955년에는 분교장에서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제1대 최정숙 교육감(1964년 2월~1968년 2월)은 풍금 보급운동을 진행하면서 장학선을 타고 횡간분교장까지 직접 악기를 실어날랐다고 한다.


횡간분교장이 운영되는 동안 도서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이른바 '장학선'이 있었다. 교사 공무와 주민들의 바깥 나들이에 쓰였다. '추자도지'(1999)에는 북제주군교육청이 1967년부터 '한영호'로 불리는 7톤 규모의 장학선을 운영했다고 썼다.

1972년부터는 새로 건조된 19톤 크기의 '청운호'가 '한영호'를 대신했다. 목선이던 '청운호'는 1982년 강선으로 탈바꿈했지만 1991년 횡간분교장이 폐교하면서 이 배는 북제주군청으로 넘겨졌다. 선원이 6명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장학선 선장이던 원장희씨에 따르면 횡간도에 전기가 안 들어오고 전화가 없던 시절엔 장학선이 싣고 오는 소식을 들으려 섬 주민들이 모두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한때는 60명의 학생이 다니던 학교였지만 학생 수 감소로 1991년 3월 1일자로 폐교하였다. 그 동안 횡간분교장은 26회에 걸쳐 총 16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옛 학교 터임을 알리는 배움의 옛터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지 면적 1,407㎡ 건물 면적 114.9㎡인 이 터는 주민에게나 일반인에게 대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한라일보(2011년 9월 27일)에는 〈폐가로 변한 옛 배움터 잡풀로 뒤덮이고 곳곳 파손〉이라는 제하에
〈김영태 횡간도 자가발전소장의 안내로 분교장을 찾았을 때 간신히 눈에 띈 것은 '배움의 옛 터'가 새겨진 빗돌이었다. 그 나머지는 처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잡풀이 웃자라 건물을 뒤덮은 탓에 옛 학교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문짝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고 군데군데 이가 빠진 마룻바닥은 금세 무너져내릴 듯 했다. 어딘가에 직원 숙직실, 간이 창고,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었을 테지만 1991년 문을 닫은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차츰 잊혀진 횡간분교장은 그렇게 방문객을 맞았다. 40년간 섬의 아이들을 키워냈던 학교는 이제 뼈대만 남은 채 가쁜 숨을 쉬고 있다.〉


이라는 내용을 실었다. 한편, 1969년 추자면 추포도에 추포교습소는 개설되었던 1983년 폐소되었다.
《작성 140516, 보완 16122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