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서편 구릉은 칼과 같은 지형.. 이호2동 방사탑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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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서편 구릉은 칼과 같은 지형.. 이호2동 방사탑2호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8.13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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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이 돌탑을 탑, 방사탑, 방쉬탑, 까마귀 등으로 부른다

이호2동 방사탑2호

 

위치 ; 제주시 이호2동 1529-2(제주시 오광로8)
유형 ; 민속신앙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이호2동_방사탑2호 南
이호2동_방사탑2호

 

방사탑은 마을 어느 한 방위에 어떤 불길한 징조가 비친다거나 아니면 어느 한 지형이 비교적 虛하다면 그러한 허한 방위를 막아야 마을이 평안하게 된다는 속신에서 쌓아 올린 제주도의 탑이다.

여기서 탑이라고 하는 것은 본연적 의미에서의 즉 불교에서의 탑이라기 보다는 그 형태가 불교에서의 탑처럼 돌을 쌓아 올렸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붙여진 말이다.


방사탑을 쌓을 때는 좌우, 음양, 남북 대칭으로 쌓는 것이 보통이며, 탑 위에 새의 형상을 한 돌이나, 사람의 모양을 한 석상을 세운다. 또한 탑을 쌓아 올릴 때 속에는 밥주걱이나 솥을 묻고, 그 위로 돌담을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쌓았다.

밥주걱을 묻는 이유는 솥의 밥을 긁어 담듯이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 들이라는 뜻이요, 솥을 묻는 것은 솥은 무서운 불에도 끄떡없이 이겨내라는 의미로서, 마을의 재난을 방액(防厄해) 달라는 뜻인 민간 신앙적 사고로 여겨진다.


왓마을은 이호해수욕장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대략 20호 정도의 아담한 마을이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이 근처에는 모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어지면서 모래가 쌓이기 시작하여 갑자기 모래 구릉이 생겨 버렸다.

그 뒤로 왓마을 사람들에게는 액(厄)이 생기고 어디선가 날불(火)이 날아와 집에 붙어서 화재를 잘 냈다. 마을 사람들은 불길한 일을 없애려고 궁리한 끝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방향에서 액운이 들어온다고 생각하여 탑 자리에 돼지를 묻고 돌탑 4기를 쌓았다.


마을의 남쪽은 동서편으로 지형이 험하다. 서편의 구릉은 칼과 같은 지형이라고 하는데 이 형태의 지형은 사람들에게 액과 단명(短命)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 반대편 지경에 돌탑 1기를 쌓고 위에는 장대를 꽂았다. 장대 꼭대기에는 까마귀라고 하는 새 모양을 만들어 붙였다. 새는 신의 사자로 재앙을 쫒는 상징물인 까마귀를 형상화한 것이다.


새는 칼과 같은 서편의 구릉을 쫓음으로써 기를 꺾는다고 이해되고 있다. 외부로 부터 침입하는 살(煞)과 부정(不淨)을 막는 방액, 방사의 의도에서 이 돌탑이 세워진 후 날불․액 등이 없어졌고 마을은 평온을 되찾았다고 전해진다.

4․3 때는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도 폐촌이 되었었다. 사건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재건할 때에는 맨 처음 한 일이 탑을 보수하는 일이었다.(제민일보 950419‘濟州島의 石造物’)

탑을 쌓을 때 함께 했다는 할머니 말에 따르면 "마을에 이유 없이 화재가 나고 불길한 징조가 비쳐 탑을 쌓았다"고 한다.(제주의소리 070813)


마을 사람들은 이 돌탑을 탑, 방사탑, 방쉬탑, 까마귀 등으로 부른다. 돌탑은 제주 현무암을 적당히 다듬어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동쪽에서부터 1~4호로 명명하였는데 2호는 1호에서 서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으며, 탑 주변은 평탄 지형이다. 탑의 규격은 높이 310㎝, 밑지름 262㎝, 윗지름 226㎝로 밑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은 원뿔대 모양이다.

탑의 위에는 가운데가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 있으며 여기에 길쭉한 3개의 돌이 삼각뿔 모양으로 기대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개만 세워져 있다. 건물과 건축자재로 가려져 전체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작성 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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