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설촌 이전에 있던 절 추정.. 삼달1리 절터
상태바
[향토문화] 설촌 이전에 있던 절 추정.. 삼달1리 절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08.27 08: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16세기에 제작된 상감·인화·귀얄로 장식된 편들로 상감장식 매병편 출토

삼달1리 절터

 

지역 ; 성산읍 삼달리 1114, 1115, 1148, 1149번지 일대.
시대 ; 조선
성격 ; 불교유적(사찰 터)

삼달1리_절터
삼달1리_절터그릇조각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이다. 삼달1리사무소에서 500m 더 가 매미못을 끼고 서쪽 게이트볼장 밑으로 300m 더 간 다음, 팽나무가 있는 두 번째 다리를 건너 다다른 삼달천 옆의 과수원 일대가 삼달리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에는 삼달리 1114번지라고 하였으나 그 주변 1148, 1149번지 등에도 그릇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절터는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달신풍로139에 사시는 할머니는 절터가 어디냐는 물음에 높은 동산 밭이라고 대답하셨다. 높은 동산이라는 밭은 1115번지이다.


삼달리 절터로 불리는 속칭 절왓 일대는 예로부터 절터로 알려진 곳이다. 오래 전에 사찰 건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납작한 돌들이 있었으나 과수원으로 조성되면서 모두 사라지고 없는 실정이고 주변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찰 추정지에는 질그릇편, 청·백자편, 분청사기편, 기와편 등이 산재하고 있다. 또한 명문의 굽 높은 접시편과 아울러, 돌공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과수원 남쪽 낮은 구릉지와 ‘절왓’ 인접의 동산 일대에 위치한 ‘고망할망당’의 아래 밭 과수원 주변 돌무더기 틈에서도 많은 자기편이 발견되었다.

삼달리 ‘절왓’ 일대의 유물편으로 보아, 사찰은 조선 시대 초기에 창건되어 중기 경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발굴조사 결과 청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백자와 도기가 출토되었다. 청자는 2점이 확인되었으며, 분청사기는 15~16세기에 제작된 상감·인화·귀얄로 장식된 편들로 상감장식 매병편도 출토되었다.

백자는 대접·발·접시·병·제기 등의 다양한 기종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지방 가마에서 제작된 조질백자이다. 문양이 없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릇 안바닥 중앙에 청화로 장식한 예도 확인되고 있다.

대부분 17세기와 19세기에 제작된 것들이 출토되고 있다. 도기도 출토되고 있지만 그 수량은 매우 적다. 형태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에 따르면 발굴되는 문화재에 대한 정밀조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2014년 6월 필자의 답사 때에 1114번지에서는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의 매우 작은 조각들이 발견되었고, 1148, 1149번지에서는 비교적 큰 조각들과 질그릇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사진은 1114번지의 그릇 조각이다. 어디에서도 기와 조각은 볼 수 없었다.


삼달리 마을 누리집에는 절터에 대해서 설촌 이전에 있던 절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작성 14060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