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알밤오름'(下栗岳)' 일대에 조성..선흘2리 개척농가주택(테시폰)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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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알밤오름'(下栗岳)' 일대에 조성..선흘2리 개척농가주택(테시폰)⓵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0.14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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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인 엔지니어 제임스 월러가 고안한 구조형식을 이용한 것

 

선흘2리 개척농가주택(테시폰)⓵

 

위치 ; 조천읍 선흘리 626-7번지(선교로 16-7)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주택

 

선흘2리_개척농가주택

 

이 주택은 원래 아일랜드인 엔지니어 제임스 월러가 고안한 구조형식을 이용한 것이라고 한다. 용어는 삼안식, 이시돌식, 크테시폰, 테시폰, 테쉬폰 등으로 쓰여 통일되지 않은 상태이나 원어 Ctesiphon을 필자는 테시폰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각재 및 평철을 기본구조로 하였으며, 합판대신 삼베나 가마니 등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구조체를 제작하기 때문에 공법이 간단하고 특수기능공이 필요 없고 목재가 절약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균열이 발생하기 쉽고, 단열이 되지 않으며 곡면으로 인하여 창문위치가 제한되어 채광과 환기면적이 적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도입 개발되지 못하였다.

이렇게 민간부분에서는 대한주택공사가 주택공급수단으로 검토하다가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공급하지 않았던 삼안식 주택(콘센트 막사형식의 주거양식)이 제주지역에서는 이시돌목장을 중심으로 활용됐다.

그 배경에는 빠른 시일 내에 건축할 수 있다는 장점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근대식주택이라는 인식과 절대적으로 부족한 당시의 제주지역 주택사정과 잘 결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시돌협회의 임 신부는 입주에 앞서 1963년 3월 전국가톨릭복지협의회 보증으로 미국정부로부터 사료용 옥수수 도입을 승인받고, 개척농가 조성에 따른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사료용 옥수수 1차분 일부는 이시돌목장의 사료로 이용하고, 일부는 되팔아서 금악, 오라, 선흘 등에 있는 토지를 매입한 뒤 집과 축사가 딸린 개척농가를 건립했다. 그 첫 사업 성과가 바로 선흘리 '알밤오름'(下栗岳)' 일대에 조성된 개척농가였다.

1963년 12월 조천면 북동쪽 중산간 마을인 선흘리 목선동에 제주지역 20~30대 젊은 농부들이 가족을 데리고 선흘리 개척농가에 입주했다. 입주자는 한림성당 임 파트리치오 신부가 설립한 성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에서 2주간 귀농교육을 받은 농부들이었다.

입주자들은 모두 22개 동(棟) 가운데 10여개 동이 들어왔다. 개척농가에겐 타원형의 반쪽을 엎어 놓은 듯한 주택(18평)과 창고(20평), 돈사(4평), 2만평 내외의 토지 등이 주어졌다.

개척농가 주택은 방 2개, 마루 1개, 온돌 아궁이가 설치된 부엌, 수세식 화장실이 달린 '원룸 주택'이었다. 당시 온돌 부엌과 연통, 창문이 있는 농촌주택은 흔치 않았다.

개척농가의 드럼통형 주택은 1962년 지은 이시돌목장 직원숙소를 모델로 했다. 집은 나무 10개로 건물외형(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멍석같이 긴 가마니를 덮고 시멘트를 바른 것이었다. 시멘트 두께는 10cm 미만이었다. 나무와 가마니를 떼어내면 집은 완공됐다.

임신부는 집을 지을 때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말도 들었다고 한다. 결국 혼자 나무와 가마니를 떼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후 개척농가의 집은 이것을 모델로 보급됐다. 창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지어졌다.

현재 개척농가 건물은 주택 7~8동, 창고 7동이 남아 있다. 돈사는 철거됐다. 40여년 넘도록 개척농가 건물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람에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은 개척농가는 비만 샐 뿐 외형은 건재하다.

양상호에 따르면 선흘리 개척농가의 건물은 구조적인 합리성, 시공상의 편이성, 경제적인 재료의 사용 등은 건축의 기본을 철저히 이해한 결과로서 지어졌다고 한다.

이 건물들은 지붕과 벽체를 일체화하여 타원형의 형태가 이루어지고, 그 내부에 블록으로 칸막이를 하여 각 방을 설치하였으며, 적절한 위치에 개구부를 두어 출입문과 창문을 둔 것이다.

지붕과 벽체를 이루는 구조체는 시멘트몰탈(시멘트와 모래, 물을 혼합한 재료)을 5~8cm 정도의 두께로 덮어 응고시킨 것인데, 파도 모양의 형태가 된 것은 지금과 같은 합판거푸집이 아닌 가마니로 거푸집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시멘트몰탈의 무게에 의하여 가마니거푸집이 늘어져서 자연스럽게 파도 모양의 구조체가 만들어졌다.

선교로16-7에 있는 이 건물은 벽돌 벽에 스레트 지붕으로 공간을 확장하였다. 이 집은 처음 입주자가 2011년까지 주택으로 사용하였다.
《작성 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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