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지형 존재..선흘2리 거문오름(검은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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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지형 존재..선흘2리 거문오름(검은오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1.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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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북쪽 거멀창굼부리(분화구)에 수직으로 된 천연동굴이 있는데, 수직동굴이라 부른다

선흘2리 거문오름(검은오름)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44호(2005년1월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2007년)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산102-1번지 일대

선흘2리_거문오름전경
선흘2리_거문오름분화구

 

[개설]


검은오름은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덕천리의 경계지대에 발달한 오름이다.
GPS 좌표에서의 위치는 N33〬25′24″~33°29′00″, E126〬40′19″~126〬46′10″이다. 한라산 기슭에 분포하는 분석구(噴石丘) 중 하나로서 평면 형태는 말굽형이다. 형성 연대는 30~20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456.6m, 비고 112m, 둘레 4,553m, 면적 809,860㎡, 폭 1,188m이며, 모양은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의 화구로 이루어져 있다.

거문오름 북쪽의 거멀창굼부리(분화구)에는 수직으로 된 천연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을 수직동굴이라고 부른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오창명) 약30미터 깊이의 수직동굴에서는 동굴 벽면의 구조로부터 용암의 유출된 양과 형태를 알려준다.(제주특별자치도 누리집 제주의 문화재)


주변에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고 부르는 지형이 존재한다. 이는 거문오름으로부터 분출된 다량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북북동 방향으로 지표면의 경사를 따라 해안선까지 흘러가면서 만든 일련의 용암동굴군이다. 선흘수직동굴, 뱅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이에 속한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오창명)


점성이 낮은 용암이 분출되어 흐를 때, 용암류 속에서 녹은 유체 용암이 고체 용암 표면아래에 화도와 같은 통로를 따라 흘러가는데, 이 통로를 용암튜브(lava tube)라 한다. 이 용암튜브는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데, 나중에 흐르는 용암류가 이 빈 공간을 채울 수도 있고 비어있는 상태로 남을 수도 있다. 만일 용암튜브 내에 비어있는 공간이 사람이 들어갈 만큼 큰 규모로 남아 있으면, 이를 용암튜브동굴(lava tube cave)라고 부른다.


그리고 용암튜브가 일부 함몰되어 분절이 일어나면 여러 개의 용암동굴로 나눠진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둘 이상의 용암튜브가 만들어지면 이들을 모아 용암튜브계(lava tube system)라고 부른다.(제주의 소리 120621 장태욱 글)


이 화산체로부터 흘러나온 용암류가 지형경사를 따라 북북동의 방향으로 해안선까지 도달하면서 20여개의 동굴을 포함하는 용암동굴시스템을 완성시킨 근원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 동굴 시스템 내에는 3개 방향의 동굴계가 형성되어 있다.

제1동굴계인 거문오름에서부터 당처물 동굴까지는 약 13km에 걸쳐 거의 직선적으로 형성된 용암동굴시스템 내에 뱅뒤굴, 만장굴, 김녕사굴과 당처물 동굴이 이어져 있으며 지형도 상에서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 시스템은 이 지역에 있었던 2단계의 화산활동을 거쳐서 형성되고 진화되었다. 2단계의 화산활동은 한 분화구는 지표상에서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 용암동굴시스템을 형성하고, 진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분화구는 거문오름으로 생각된다.

이 지역에 분포하는 용암동굴의 발달방향을 추적해보면 거문오름 방향에 모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2단계 화산활동을 통해서 만장굴과 같은 주굴의 원지형이 형성된 후 약 30만년 전을 전후해서 활동하기 시작한 거문오름에서 막대한 양의 용암류가 여러 번 분출하여 이 용암동굴시스템을 완성한 것으로 해석된다.(제주특별자치도 누리집 제주의 문화재)


지난 2005년 안동대학교 황상구 교수 등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 신청을 위해 문화재청과 제주도의 요청을 받아 거문오름 분석구를 비롯하여 인근의 용암굴을 조사하였다. 이들의 발표에 따르면, 이 일대에 거문오름 분석구에서 유래하는 용암류역이 형성되어 있고, 용암류역은 고도 350m에서 시작해 북동부 해안까지 노출된다.

그리고 용암류역의 지하에는 2~3개의 용암튜브계를 형성하였다. 거문오름이 제주동부 지하에 그물처럼 엮여있는 여러 용암동굴계의 젖줄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뚜렷한 튜브계가 거문오름동튜브계라고 했다.


황교수 등은 당시 조사를 바탕으로 거문오름동튜브계는 거문오름 분석구에서 발생한 다량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하천 계곡을 따라 북동쪽으로 약 13km를 흐르며 형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거문오름 주변의 용암동굴계는 과거 50만년 이상의 긴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휴지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중 거문오름동트뷰계의 용암류 나이가 대략 22만년~29만년에 이르는 것이라고 발표했다.(제주의 소리 120621 장태욱 글)


거문오름 안에는 풍혈(Air Vents)이 있다. 풍혈이란 낙반이나 안석들이 성글게 쌓여 있는 틈 사이에서 바람이 나오는 곳을 말한다. 대기중의 공기는 이 암석들이 틈 사이를 지나면서 일정한 온도를 띠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철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날씨가 맑고 추운 겨울에는 풍혈에서 나오는 따뜻한 수증기가 구름으로 변하여 가늘게 올라가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명칭 유래]


예로부터 방하오름이라 불렀으며 방하악(防下岳)으로 표기 하였다. 오름의 거멀창과 수직굴 일대의 형세가 방하 또는 방아와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그러다가 검은오름 또는 검은이오름이라 하여 거문악(巨文岳·巨門岳)으로 표기 하였다.

돌과 흙이 유난히 검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동쪽에 있는 검은오름과 비교하여 서쪽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서검은오름 또는 서검은이오름 이라고도 불렀다. 이를 한자 차용 표기로 쓸 때는 동거문악 또는 동거문이악 등으로 표기하였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오창명)


다음백과사전에서는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는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어원적으로는 신령스러운 산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과거에는 이 오름을 '시려니오름' 혹은 '시련악(時連岳)'으로 부르다가 이 오름에 있는 '거멀창'이라는 수직동굴로 인해 '거문이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름은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를 지니고 있다.(제주의 소리 120621 장태욱 글)


[자연환경]
거문오름 화산체가 열려있는 북북동 방향으로는 폭 80~150m, 깊이 15~30m의 용암협곡 또는 붕괴도랑(collapsed trench=화구 중심으로부터 유출된 용암류의 침식 계곡)이라고 부르는 지형이 발달해 있다. 이는 약 4㎞ 정도 연속해서 나타나며 도내 최대 규모이다. 이 용암협곡은 화산체의 열려진 부분으로 용암이 흘러나오면서 형성된 용암동굴의 천정이 차별적으로 함몰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다음백과사전)


남쪽과 남서쪽에는 새미(부소오름)와 부대오름이 있고, 서북쪽에는 우전제비오름이 있다. 북쪽에는 웃바메기오름과 보무르가 있다. 주요 식생은 해송·삼나무·측백나무가 조림 되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 오창명)


[역사 유적]


분화구 내부에서 확인되는 갱도진지는 모두 6곳으로 알오름 사면을 뚫고 만들어져 있다. 길이는 각각 15m 내외의 직선형 구조를 보여준다. 갱도진지 폭은 140cm, 높이는 200cm 내외로, 10여m 안팎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뚫려 있다.


갱도 바닥의 떨어진 돌 틈에서는 철제 꺾쇠 10여개가 확인됐다. 꺾쇠는 당시 갱도내부에서 갱목들을 고정시키거나 연결시키는 데 사용됐던 것들이다. 나무에 그대로 박혀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1945년 당시의 갱도진지 구축상황을 엿볼 수 있다.

갱도진지 앞에는 많은 석축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분화구내 갱도는 일본군의 군수물자 등을 저장하기 위한 용도 등으로 추정된다. 오름 분화구에는 병참도로 흔적도 볼 수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일본군 대부분 병력의 주둔지는 오름 외부의 널따른 개활지다.


거문오름에서는 분화구 내부뿐 아니라 오름 능선에서도 갱도진지가 확인된다. 분화구 안쪽 사면 8부 능선지점에 있다. 길이가 각각 60여m에 이르는 갱도 2곳이 있다. 거문오름 갱도진지 가운데는 가장 긴 것이다. 폭과 높이는 각각 80cm, 1백70cm 정도 된다.

한 사람이 걸어다니기에도 공간이 좁다. 이곳의 갱도는 분화구 내부의 것과는 달리 스코리아(scoria)층을 뚫은 형태다. 갱도진지 2곳은 내부에 별다른 공간을 만들어놓지 않았다. 이는 상시 병력주둔용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정상부를 향해 뚫려 있으나 관통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갱도 내부에는 정상부와 관통하려고 시도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정상부에는 수직굴 흔적이 남아있다. 이로 미뤄보면 정상부와 연계한 통로로 생각할 수 있다. 갱도진지 입구에서는 구좌 지역 오름군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성산일출봉과 서우봉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지닌 곳이다.


이곳에는 일본군 108여단이 주둔했었다고 한다. 제주주둔 일본군 최고지휘부는 제58군이다. 58군은 그 예하에 96사단, 111사단, 121사단과 108여단 등 3개 사단 1개 여단으로 편성됐다. 일제가 거문오름에 진지를 구축한 것은 1945년 4월이다. 패전을 코앞에 둔 전쟁 막바지로 일제는 제주도를 최후 방어선으로 삼고 만주 관동군까지 7만5000여 병력을 집결시켰다. 결7호작전에 따라 연합군의 제주 상륙작전에 대비한 것이었다.


'결7호작전' 당시를 보여주는 '제58군배비개견도 제주도'에는 거문오름 일대가 스이(翠)부대라 불린 108여단(주둔 병력 6000명) 사령부로 표시돼 있다. 당시 섬 동부를 담당한 108여단은 유격전에 대비한 부대였다. 여단장은 히라오카 츠토무(平岡 力) 소장으로 1945년 4월 16~17일 사이 제주에 들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군의 또다른 군사지도인 '제주도병력기초배비요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지도에는 제주 동부지역의 유격진지대로 표시돼 있다. 제주 동부지역은 오름군이 가장 밀집된 곳이다. 또한 연합군의 유력한 상륙예상지점인 제주서남부와 대칭되는 지점이다.

후방에서 유격전을 벌이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거문오름 일대와 분화구 내부는 외부의 관측이나 직사화기, 또는 공중폭격으로부터도 완벽히 엄폐, 은폐되는 천혜의 주변여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여건이 결국은 일본군이 거문오름 일대를 주목하게 한 요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108여단이 제주 도착부터 동부지역에 배치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도착 즉시 서귀포 남원 표선 성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어 1945년 6월 중순이 되면 제주 동부지역으로 이동 배치된다. 조천읍 함덕을 경계로 구좌 성산 표선 남원일대가 해당된다. 108여단 일부 병력은 태평양전쟁이 일본군의 패전으로 치달을 무렵인 1045년 7월 말쯤에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부근으로 이동, 서부지역에서의 결전에 대비했다.


분화구 안은 물론 밖에도 당시 판 갱도와 진지, 주둔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일본군 대부분 병력의 주둔지는 오름 동쪽 외부의 넓은 개활지였다.(한라일보 080515)


오름 남동쪽의 병참도로는 병력주둔지인 오름 외부에서 내부의 갱도진지 등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 만든 길이다. 한 사람이 걸어갈 정도의 너비이다. 지금은 생태탐방로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거문오름은 2005년1월6일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되었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과 함께 2007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거문오름은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군사시설물과 숯가마터도 남아있는 등 다양한 역사 및 문화자원을 갖추고 있다. 제주 국제공항으로부터 자동차로 30분, 제주 도심으로부터는 20분 거리에 있어 관광객들의 접근성도 매우 유리하다.


2008년에는 세계자연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여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세계자연유산 관리본부는 거문오름 트레킹 코스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8년 9월 1일부터 전면적인 사전예약제를 도입하고 있고 탐방시간도 출발시간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은 자연휴식의 날로 정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다음백과사전)
《작성 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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