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넓은빌레 바다 싸움'..신천리(하천리) 천미천 평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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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넓은빌레 바다 싸움'..신천리(하천리) 천미천 평화교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1.17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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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리 학생들이 평화교를 건너는 것을 두렵게 생각할 정도로 심각할 때도 있었다

신천리(하천리) 천미천 평화교

위치 ; 성산읍 신천리와 표선면 하천리 사이 천미천
유형 ; 교량
시대 ; 대한민국

 

신천리_평화교

 


천미천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하천리와 신천리는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천을 건너면 만나는 이웃사촌이다. 하지만 바다 해산물 채취를 놓고 양 마을 주민 간 갈등이 이어졌다. 천미천에는 넓은 빌레가 있는데 이곳에서 하천리 해녀가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해 왔다.

그러던 중 1961년 일주도로가 천미천을 가로질러 통과함으로 인해 다리공사를 하고 이름을 '하천교'라고 하자 신천리에서 반발하며 큰 싸움으로 번졌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연유를 내포하고 있었다. 속칭 '넓은빌레 바다 싸움'이다.

'평화교 사건' 전까지만 해도 넓은빌레는 하천리 해녀가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는데 싸움이 양부락에 심상치 않게 대두되자 당시 군사정치할 때에 하천리 신천리 주동자급 각 3명씩 구속시킨 다음 조정위원회를 열어서 속칭 개앞바다를 보행으로 다니면서 채취가 가능한 둔북, 톳 등은 신천리에서 채취하고 입어를 해서 채취하는 것은 하천리에서 채취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실정이다. 이 일을 평화교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후로도 젊은 학생들간에는 간헐적으로 돌맹이 맞히는 싸움이 벌어져서 머리를 다치곤 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심지어는 신천리 학생들이 평화교를 건너는 것을 두렵게 생각할 정도로 심각할 때도 있었다 한다.(마을 누리집 강봉옥 글)

그리고 다리 이름은 당시 도의원인 제주시 화북동 출신 청탄 김광추 선생이 '평화교'란 명칭이 어떨까하는 의견을 내놓자 양 마을이 이를 수용해 '평화교'가 됐다고 전해진다.(제민일보 141025) 제주도에서는 가장 긴 다리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다리는 1995년 6월 23일 착공하여 1997년까지 2년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교량 연장 길이 104m, 교폭 24.5m, 유효폭 15.5m이며, 다리 높이는 4.4m이다.

상부 구조는 RC슬래브교, 하부 구조는 중력식 교각이며, 설계 하중은 DB-24이다. 발주처는 제주개발건설사무소이며, 경동기술공사가 설계를 하고 한석 ENG가 감리를 맡아 국제종합건설이 시공했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집필 강만익)
《작성 1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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