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불타는 교육열과 정성, 부지와 건물 마련.. 신풍리 신풍분교장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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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불타는 교육열과 정성, 부지와 건물 마련.. 신풍리 신풍분교장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1.23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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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고 싶고 , 머물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어멍아방 잔치마을’ ..기숙형 시골유학센터 열어

신풍리 신풍분교장 터

 

위치 ;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500번지(신풍하동로37)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교육기관

 

신풍리_신풍분교교사증축기념비

 

신풍리_신풍분교장

 

신풍리는 조선시대 향리들이 거주했던 마을로 많은 유학자와 유생들을 배출했다. 이런 영향으로 주민들의 교육열도 높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마을 향교 설립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신식교육을 하기 위한 신풍학당이 설립되기도 했다.

1970년 설립된 신풍리의 초등학교인 신풍분교가 1996년 풍천초등학교로 통폐합되자 마을주민들을 교육청에 신풍분교 시설을 활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신풍분교는 1999년부터 성산읍 청소년수련원으로 위탁받아 활용하게 됐다. 분교장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단체숙박, 행사 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식당시설, 야외공연장, 강당, 캠프파이어장, 소운동장 등이 있고 테마체험도 할 수 있다. 수련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전통초가와 체험장등을 조성했다.

마을 주민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추진해 작은 소득이라도 벌어야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는 농촌전통테마마을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련원에서 운영초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통 혼례를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신풍리는 어멍아방 잔치마을이라는 브랜드를 갖게 됐다.

신풍리가 어멍아방 잔치마을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내걸고 전통 테마 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지는 어느새 10여년이 지난다.

마을회에서는 여행자들과 연계도 이어가고, 축제의 전문적 자문을 위하여 현재 사회적기업 ㈜제주생태관광에 축제 컨설팅을 의뢰하여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찾고 싶고 , 머물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어멍아방 잔치마을’을 만들어 보고자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신풍리는 작은학교 살리기와 마을 알리기를 위해 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에는 마을 안에 기숙형 시골유학센터를 열었다.

도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농촌 작은 학교에서 어린이를 교육시키고 싶지만 사정상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오기는 어려운 가정을 위한 일종의 기숙사이다.

유학센터에 입주한 어린이들은 풍천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마을 어린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생태미술, 농사체험 등 마을 주민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주말 프로그램도 체험하게 된다.

아이들은 작은 학교에서만 가능한 인성교육, 체험 위주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신풍리 마을 누리집, 제주도 여행 정착 길라잡이 카페, 블로그 이어이어잇다보면 고제량 글)

분교장 터 입구에는 1970년 12월에 세워진 校舍增築記念碑가 있다. 비석 오른쪽 앞에는 敎育發展 後代育成, 왼쪽에는 在日鄕里國民學校 建設後援會 會長 金官玉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5천원에서 20만원까지 희사한 분 27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배움의 옛터 표석에는 〈이곳은 남제주군 성산읍 신풍리 500번지로서 풍천초등학교 신풍분교장의 배움의 옛터입니다.

학구민의 불타는 교육열과 정성으로 부지와 건물을 마련하여 1970년 3월 6일 개교하여 26년 간 394명의 어린이들이 푸른 꿈을 키우며 배움의 꽃을 피우다가 아쉽게도 학교에 다닐 어린이가 줄어들어 1996년 3월 1일에 문을 닫으며 풍천초등학교에 통합되었습니다.

이에 이곳이 오랫동안 배움의 불을 밝혔던 자리임을 길이 알리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 1996년 3월 1일 풍천초등학교장〉
《작성 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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