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액(厄) 막기 위한 성담.. 어음2리 알성(방사용 성벽)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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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액(厄) 막기 위한 성담.. 어음2리 알성(방사용 성벽)멸실
  • 고영쳘(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2.12.0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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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꼭 있어야 할 시설.. 젊은이들이 잘 몰라 치워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어음2리 알성(방사용 성벽)멸실

 

위치 ; 애월읍 어음2리 3005-1번지∼3015번지. 서동네 서쪽 150여m 지점 서쪽으로 난 농로로 들어가서 100여m 되는 지점에서 길이 150여m
시대 ; 조선
유형 ; 민속신앙(방사용 성담)

 

어음2리_방사성벽

 

어음2리 주민들은 북쪽이 허(虛)하다고 해서 액(厄)을 막기 위해 길게 성담을 쌓았다.

이 마을은 연산군 시절(1504년) 갑자사화로 은산부원군 후예인 홍문관 교리 박후신(朴厚信)이 노복 30명을 거느리고 유배되어 황무지를 개간하며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어음리 설촌 당시 풍수지리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동북방이 터져 있어 바다가 보이므로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며 그 방향을 박고 석탑을 쌓아 제사를 지내야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탑을 쌓으니 이상하게도 탑 아래 북쪽의 정구물을 위시한 동쪽 하천변 대섶밭 일대에 형성되었던 대촌이 점차 사라져 농지가 되어 버렸지만 어음리에서는 화재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서쪽에 세운 방사탑인 섯답(西塔) 남쪽 30m 지점부터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최대 높이 4m에 아래 폭 1.2m, 위 폭 70∼80㎝ 정도이며 길이가 원래는 300m에 이르는 규모였다고 하는데 2004년에는 약 200m, 2014년에는 약 150m가 남아 있었다. 성은 묵은성이라고도 불렀으며, 성 밖으로 이어진 길을 성알질(길)이라 한다.

이미 1990년대 말에 부분적으로 허물어진 곳이 있었지만 2000년대 초까지는 성담의 전체적인 모습이 남아 있었으나 2014년 성담(방사벽)을 따라 새 도로를 건설하면서 성담을 모두 허물어 성담이 있던 곳은 길의 가운데가 되어 버렸다.

동네 어른들은 마을에 꼭 있어야 할 시설인데 젊은이들이 잘 몰라서 치워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작성 2015-01-14, 보완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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