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일제강점기 이후 본격 도입.. 서홍동 온주감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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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일제강점기 이후 본격 도입.. 서홍동 온주감귤나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3.02.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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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나무는 1그루뿐..중국의 온주지방에서 나는 감귤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홍동 온주감귤나무

 

위치 : 서귀포시 서홍동 204번지 면형의집(구 福者修道院) 내
유형 ; 귤나무
시대 ; 일본강점기

서홍동_미장온주귤나무

 

 

귤나무(Citrus unshiu)는 한국·일본·중남미·흑해 등지에 분포하는 상록성 소교목이다. 운향과의 상록수로 인도가 원산지이며 히말라야 동부와 중국의 양쯔강 상류 지방에서 고대부터 재배했다. 높이는 3~5m이고 가지가 퍼지며 가시가 없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잎자루의 날개는 뚜렷하지 않다. 꽃은 6월에 백색으로 핀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고 수술은 많으며 암술은 1개이다.

제주에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감귤류가 재배돼 진상품목으로 오르기도 했으나 현재 상품화된 온주밀감(온주감귤)은 일제강점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품종이다.

온주감귤이란 말은 중국의 온주지방에서 나는 감귤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1899년 프랑스 선교사 구마슬(구홍슬, 라크루 Marcel Lacrouts)이 입도함으로써 본도에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했다.

1901년 신축교란(이재수란)을 거치고 난 후인 1902년경 타케(Taguet E,J 1873-1952 한국명 嚴宅基) 신부가 서홍리 소재 복자수도원에서 선교사업에 착수하여 이 고장의 교육 및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타케 신부는 원래 식물학자였으므로 제주도 식물을 연구하는 한편 특히 왕벚나무의 원종(原種)을 발견하였고, 많은 표본을 프랑스로 보냈는데 타케가 보내 신종으로 명명된 식물들 중에는 섬잔대, 한라부추, 왕밀사초, 두메담배풀, 섬잔고사리, 반들고사리, 갯취, 좀갈매나무, 제주가시나무, 사슨딸기, 해변취, 한라꿩의다리, 뽕잎피나무 등이 있다.

그가 채집한 것들 중에는 제주 특산식물이 많이 포함돼 있으며 '섬잔대(Adenophora taquetii Leveille), 뽕잎피나무(Tilia taquetii Schneider)처럼 그를 기념해서 붙여진 학명도 13종이나 된다.

타케 신부는 1902~1915년 서귀포성당에서 근무했고, 목포로 전근했다가 1922~1951년 대구에서 성유스티노신학교장으로 재직 당시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그 왕벚나무가 지금은 거목으로 자랐으며 이 왕벚나무 옆에 타케 신부의 묘가 있다.

또한 타케 신부는 감귤나무를 재배하여 이 고장 산업 발전에 많은 공을 남겼다. 1911년 일본 아오모리에서 근무하는 친구이며 프랑스 출신 성직자인 포리(Faurie R.P)에게 제주의 왕벚나무 몇 종을 보내준 답례로 받은 미장온주(尾張溫州) 14그루를 서귀포시 서홍동 한국순교복자 수도회(현 한국순교복자 성직수도원 제주분원, 면형의 집)에 심었다.

이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나무는 1그루뿐이다. 특히 이 나무는 10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열매를 맺고 있다. 2015년에는 나무의 가지 일부가 손상을 입어 잘라내기도 하였다.

위 사진은 2007년, 아래 사진은 2015년에 찍은 것이다.
《작성 150928, 1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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